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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2.26 상상 속에서 이루어지는 사건의 일관성과 미술사의 필연적으로 일관적 흐름
  2. 2007.02.26 화가와 왕
  3. 2007.02.26 크리스마스 캐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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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시스 베이컨.

자화상을 위한 습작. 1980.



일요일 아침 운전, 라디오에서 농담 질문이 흘러나온다. ():“얼룩말을 어떻게 냉장고에 넣지?” ():“ 냉장고를 연다. 얼룩말을 집어넣는다. 냉장고 문을 닫는다.” 듣고 보니 어의가 없다. 질문은 계속 이어졌다. ():“코끼리는 어떻게 냉장고에 넣지?” (): “냉장고를 연다. 얼룩말을 꺼낸다. 코끼리를 집어넣는다. 냉장고 문을 닫는다.” 조금 게임에 익숙해지고 재미가 난다. 다시 (): “디즈니에서 만든 만화영화 라이언 킹을 봤다면, 처음 장면이 기억날 것이다. 주인공 심바가 태어나고, 정글의 모든 동물이 모여 즐거워하는 장면. 가지 동물이 불참했다. 동물은 무엇인가?” (): “코끼리. 냉장고에 갇혀 있었다.” 게임의 힌트는 상상 속에서 이루어지는 사건의 일관성. 마지막 질문. “정글에 악어 떼가 바글거리는 수렁이 하나 있다. 곳을 가족과 함께 안전하게 건너는 방법은?” (): “그냥 건너가면 된다. 악어 떼는 심바를 보러 갔다.” 정글의 대규모 동물 모임, 외딴 곳에 흔들거리는 냉장고 , 수렁을 건너 온몸에 진흙이 얼룩덜룩한 식구들이 그려진다.

              70년대에 초등학교를 다녀, 매달 번씩 있었던 민방위 훈련 마다, 경계, 공습, 화생방, 해제 경보 사이렌을 들으며 책상다리 밑에 몸을 쪼그리고 눈코를 양손으로 막고 있었던 기억은 군사 정권의 잔재다. 시절 틈틈이 시간 마다 전쟁이 나면 가족들과 어떻게 피해야 하나를 진지하게 상상했다. 마당에 굴을 파서 특수 개인 기지를 만들어 핵폭탄으로부터도 피해를 받지 않고, 가족들과 피해 없이 살아남을 있는 방법이며, 곳의 구조를 그렸다. 물론 앞뒤로 지구를 지키기 위해 그렸던 많은 로봇들의 그림들이 있었다.

              80년대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오브 시카고(Art Institute of Chicago),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1909-92) 전시를 보던 세대 일본계 미국 꼬마가 울먹이기 시작했다. 엄마 손을 잡고 전시장을 빠져 나온 꼬마. 삼십이 가까워 오는 그의 기억에 프란시스 베이컨의 그림 너머에서 울렁대던 상상의 세계는 칼날처럼 선명하다.   

              6 동안의 2 대전이 끝나기 일년 전인 1944, 십자가 인물들의 습작 ( Three Studies for Figures at the Base of a Crucifixion) 시대의 황폐함을 여지없이 그려낸 프란시스 베이컨. 그는 일차 세계대전 황폐해진 유럽에서, 십대 중반에 부모에게 버림받고 유럽의 나라 나라를 떠돌아다니며 자라났다. 시대의 발자국이 각인된 그의 정서와 사고가 재능을 타고 드러난 그의 그림들. 그것들이 담아내고 있는 인간들, 형상들의 뿌리는 벨라즈퀴즈(Diego Velázquez, 1599-1660), 드가(Edgar Degas, 1834-1917),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 전함 뽀쫌킨, 엑스레이 사진들, 초기 연속 사진들로 뻗쳐져 있다. 남들과 전혀 다르게 등뼈가 굵은 그의 청소년기를 상상해본다면, 그림 형상들이 삐뚤어지고 터져있는 모습은 어렵지 않게 이해된다. 좋게 루시엥 프로이드(Lucian Freud, 1922-) 등의 재능 있는 화가 친구들, 주변을 의식하지 않는 카리스마와 상상력으로 독자적 시각 언어를 창조했다. 오렌지 색의 선명함과 암울하고 폭력적인 인간성, 개인의 불안정함과 격자화가 합창하는 그림들은, 끝에서 우러나오는 자신감으로 앤디 와홀(Andy Warhol, 1928-1987) 데이빗 호크니(Dadvid Hockney, 1937-) 비롯 2006 작업실에서 열심히 붓을 놀리는 화가들의 상상 속에 커다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그는 터너(Joseph Mallord Turner, 1775-1851) 이후 최고의 영국화가로 일컫어지기도 한다.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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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와 왕

그림들/sf 중앙일보 2007. 2. 26. 10:04 posted by 긴정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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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홀바인(Hans Holbein, 1497-1543) 클리브스의 앤(Anne of Cleves) 캔버스에 접착된 양피지에 유화 65 x 48 cm 1538-9

 

9 17일까지 리젼 오브 어너(링컨공원 안, 34th Avenue Clement Street)에서 노르만디의 모네(Claude Monet in Normandy)전이 열린다.  못 보면 후회할 전시다.  대학 시절 유럽의 미술관들을 돌아보겠다는 생각에 떠났던 배낭 여행. , , 고 미술 교과서에 조그맣게 조악하게 인쇄된 그림들을 실제로 바라보았을 때의 충격은, 거의 월드컵을 19인치 텔레비전으로 보는 것과 축구장에서 직접 보는 것만큼 커다란 차이가 났다.  그러니 코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네의 전시를 놓치는 것은 행복 1시간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인상주의 화가로 분류되는 모네는 드가(Edgar Degas), 르느와르(Auguste Renoir), 세잔(Paul Cézanne)과 어깨를 겨누는, 그만의 독보적인 영역을 창조한 작가이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옛날 화가들이 하던, 왕과 귀족들의 사진기 역할을 벗어 던졌다.  그 배면에 초기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경제 체제와 왕권 붕괴 후 재조정된 사회 가치가 자리잡고 있었다.

             자본주의가 절정에 달해 있는 2006년의 화가 혹은 시각 예술 작가들의 작품들은 그림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비디오, 행위 예술 등 창작의 영역이 넓어졌다.  그 와중에 전통적인 창작 행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그림 그리기라는 행위를 계속하는 작가들과새로운 창작에 의미를 두는 아방가르드 작가들의 갈등은 경제적, 정치적으로 심화되었다.  끊임없이 문화 전쟁이 지속되고 있는 미국에서 작가들간의 갈등은 오히려 당연하다.  문제는 흑백으로 치달으며 벌어지는 대화의 단절.  북한 미사일 문제처럼 적대적이고 단절적인 상황은 일반 대중으로서 개인에게 재미가 없다.

              체제와 거대 담론들은 권력층과 그 주변의 득권자들에게 만큼, 하루 하루 생활을 꾸려가는 개인들에게 연관되지 않는다.  부단한 텔레비전과 신문 등 매스 미디어들에서 분출되는 거대 담론들과 이미지들을 피하기가 쉽지 않지만, “배 고픈데 라면 끊여 먹을까?”하는 한마디보다 개인에게 다가서는 거대 담론과 프로파간다를 찾기는 하늘에서 별 따기다.  그렇다면 권력자와 권력층의 이익과 행복이란 얼마나 특별하고 중요한 것일까?

             1539년 잉글랜드의 왕 헨리 8(Henry VIII)  네 번째 부인을 결정하기 위해 궁정화가 한스 홀바인(Hans Holbein, 1497-1543)을 클리브스로 보낸다.  그 곳 공작의 힘을 얼으려는 책햑과 더불어, 두 자매 중 앤(Annes)의 얼굴을 그림으로 보고 결혼 여부를 결정하려 했던 것.  그런 왕의 생각 덕분에 우리는 홀바인이 그린 클리브스의 앤(Anne of Cleves)라는 명작을 접하게 되었다.  관람자의 시선을 다소곳이 피하는 그녀의 태도, 피부색에 어우러지는 낭만적인 주홍의 주름들이 흘러내리는 의복, 그 위로 겹쳐지는 장신구, 그녀와 의관을 부드럽게 감싸주는 배경의 녹색.  그림을 본 후, 헨리 8세는 당연히 결혼하기로 결정했다.  비극은 런던으로 찾아온 앤의 모습이, 그림을 본 후, 기대로 꽉 찬 왕의 눈에 차지 않아서 시작되었다.  왕은 프랜더즈의 말(a Flanders mare)이라고까지 언급했다.  결혼을 취소하는 왕의 노력은, 조약 때문에 무산되고, 둘은 1540년 초에 결혼해서, 같은 해 중순에 이혼했다.

              예나 지금이나 왕들과 권력자들도 개인들과 다를 바 없는 인간들이고, 조금이라도 더 행복해지기 위해 힘을 쓰는 것이 당연지사인 듯 하다. 귄력과 무관한 대다수 개인에게, 다행인 것은 개인의 권리와 지위가 역사 속에서 상위 조절되어가고 있다는 것, 그리고 리젼 오브 어너가 샌프란시스코에 있고 모네의 전시를 볼 수 있다는 것.

 


2006 7

크리스마스 캐롤

그림들/sf 중앙일보 2007. 2. 26. 10:03 posted by 긴정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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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ssetti, Dante Gabriel

A Christmas Carol
1857-58
Watercolor and gouache on panel
13 1/8 x 11 1/4 in
Fogg Art Museum, Cambridge, Massachusetts

 

 

1862 2 11 런던의 저녁은 탁탁한 안개가 가득 담긴 어둠이 도시를 덮고 있고, 그녀의 안에는 아편 정기가 병목까지 담긴 뚱뚱한 녹색 유리병이 날카롭게 반짝거린다.   번째 임신의 결과가 차갑게 딱딱한 딸로 이어지지만 않았어도 이럴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결혼하기 결정적인 순간마다 혼인을 뒤로 미루던 지금의 남편을 뒤로 하기만 했어도 이럴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정도 양의 아편 정기면 짓궂은 현실의 손에서 벗어나기에 충분할 거야.’ 

서른 엘리자베스 시달(Elizabeth Siddal) 자위가 촉촉해진다.  생각지도 않은 너무 빨리 다가온 번째 임신이 이런 결정을 도운 것인지도 모른다.  

남편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1869 영국 첼시의 지붕 밑에서 가득한 위스키를 들이키며 사십대 중년의 단테 가브리엘 로제티(Rossetti, Dante Gabriel) 탁자 위에 책들을 응시한다.  낡은 스케치북들과 시집들.  귀가 닳은 스케치 권을 집어 연다. 여기 저기에 엘리자베스 시달의 모습이 보인다.  그녀의 구리 머리카락, 도톰한 복숭아 입술, 우아하게 목선.  스케치북 여기저기에 그녀는 그녀의 미모를 추앙하던 많은 화가들로 둘러 쌓여 있다.  

나도 명이었지.’ 

그의 씁쓸한 미소 위로 잔이 기운다.   화가들 사이를 아름다운 금발과 섬세한 외모로 횡보하던 자신의 모습이 떠오른다.  시와 그림, 아름다운 여인들로 물들여졌던 시간들.  이제는 과거다.  어느새 그의 상반신은 육중하게 불룩해졌고, 옅어진 금발들은 그의 머리를 가리지 못한다.  술과 약이 없이는 하루를 보내기 힘들다.

그의 하루를 채우는 슬픔과 공포는 탁자 위의 시집들에서 스며난다. 

저것들만 없었어도, 저것들만 테이블 위에 놓여지지 않았어도, 이렇지는 않았을 꺼야.’ 

시집들은 모두 로제티가 것들이다.  그것들은 엘리자베스를, 젊음을,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노래들은 모두 엘리자베스와 함께 묻혀져 있었어야 했다.  친구 화웰의 감언이설에 넘어가서 시집들을 엘리자베스의 무덤에서 꺼낸 일은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다.  엘리자베스가 관속에서 아직도 미모를 지키고 있었고, 그녀의 구리 머리카락이 자라나 관을 가득 채우고 있다는 화웰의 이야기는 듣지 말았어야 했다.  그것들을 출판했던 일은 더할 나위 없이 어리석은 일이었다.  시집을 폄하했던 평론가들과 세상 사람들의 비난은 괴로운 일이지만 견디지 못할 것은 아니었다.  

그런 것들은 사실 것도 아니야.’  

그를 사로잡아 경직시키는 그것은 속에 누워 있는 엘리자베스의 모습에 대한 상상이었다.  그의 상상을 가득 채우며, 자라나는 그녀의 진한 구리 머리카락과 그녀의 얼굴.  이 상상은 현실보다 강렬하다.  지우려고 애써보아도 더욱 선명해지며 커지는 이미지를 로제티는 참을 수가 없었다. 

왈칵 입안으로 위스키를 털어놓고, 잔을 탁자에 내려놓으며 술병으로 눈을 돌린다.  술병 너머로 예전에 그린 그림이 하나 보인다.  크리스마스 캐롤.  엘리자베스와 결혼 , 그녀가 임신하기 일년 전에 그렸던 그림이다.  그림 위로 애를 가진 기쁨에 어린아이처럼 흥분을 감추지 못했던 그녀의 모습이 겹쳐진다.

2006년 12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