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리 카셑(Mary Cassatt)
Mother and Child
c. 1900
Pastel on tan woven paper
71 x 58.5 cm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샌프란시스코 시내에서 바트(장거리 지하철)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여자 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기차를 기다리는 여성이 눈에 들어왔다.
아기를 바라보는 눈이 변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가장 큰 것은 집에 있는 두 살 갓 지난 딸 아이를 키운 경험 때문일 것이다. 처음 처가 임신했다고 말해 주었을 때의 가슴을 메우던 복잡하고 들뜨던 감정부터 시작된 아기와의 인연은 여러 가지 생각을 선사해 주었다. 가장 직접적으로 수면에 떠오른 질문은 부모님들에 대한 것이다.
‘다섯이나 되는 자식들을 어떻게 키우셨을까?’
하나 낳고 “이제 그만 낳아야지.”
하는 부모들이 많은 지금.
“둘 낳아 기르는 사람들은 부자야.” 하고 “저 집 재벌인가 보다 자식이 셋이야. 셋을 어떻게 기를까?” 하는 사람들. 그 틈에서 어린 시절 할머니의 말씀이 떠 오르곤 한다. “아기는 삼신 할머니께서 점지해주시는 거야. 아기들 엉덩이가 파란 색인 것은 엄마 배 속에서 편하게 먹고 놀다가 바깥 세상으로 나가기 싫어하고 힘들어하는 아기들 어여 나가라고 엉덩이를 한 대씩 쳐주셔서 파란 색인 거야.”
“근데 삼신 할머니가 누구야?”하고 할머니에게 몇 번이고 물어보았다. 그러면 할머니의 답은 항상 같았다. “엄마 아빠한테 아기를 주시고, 아기들 자라날 때 건강하고 씩씩하도록 돌봐주시는 분이지.” 할머니 치마 폭이 아늑해서 몇 번이나 했던 이야기들.
이제 할머니는 삼신할머니와 함께 즐겁게 혹은 아이들을 돌봐주시고 계실 것이다.
미술 교과서 어디에서인가 만나서 지금까지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있는 이미지 하나는 미켈란젤로(1475 –1564) 의 대리석 조각 피에타(Pietà,
1498-1499)이다.
미켈란젤로는 여러 개의 피에타를 조각했는데, 그 중 가장 유명하고 잘 만들어졌다고 평가 받는 것이 로마에 있는 성 피터 바실리카(St. Peter’s Basilica)에 있다.
성모께서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그녀의 무릎 위에 올려 놓으시고 차마 눈을 떠 내려보시지 못하고 있는 모습의 조각이 그것이다. 매번 이 조각의 사진을 볼 때마다 낮고 서늘하게 정화하는 흐느낌의 리퀴엠(|Requiem)을 듣는다. 음악을 들을 때, 형상과 색을 느꼈다는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1866-1944)와는 비슷하게 다른 셈이다.
성공한 주식 중계인 아버지와 금융계 집안에서 자라난 어머니 사이에서 자라난 메리 카셑(Mary Cassatt, 1844-1926). 그녀의 어머니와 아기 그림은 부드럽고 뽀송뽀송한 봄의 소리를 들려준다. 집안의 반대에도 불고하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그녀는 펜실베니아 아카데미 보드 화인아트에서 수학하다 남학생 중심의 교육에 염증을 느끼고 유럽으로 향했다. 그녀는 당시 서양 예술의 중심이던 프랑스 파리에서 인상주의 화가 카밀 피사로(Camille Pissarro, 1830 –1903)를 만나, 그의 밑에서 그림을 배웠다. 그곳에서 파스텔로 그림을 잘 그리는 드가(Edgar Degas 1834 –1917), 마네(Édouard Manet, 1832 –1883)의 그림에 등장하는 아름다운 여자 화가 벌스 모리섵(Berthe Morisot, 1841 – 1895)과 친구가 되었다. 르느와르(Pierre-Auguste
Renoir, 1841– 1919)의 붓 놀림을 접했다.
그 후 그녀의 그림은 점점 자라나 인상주의 화가들의 영향에서 벗어난 간결하고 단순한 형상과 부드럽고 감성적인 빛을 담아내는 색들로 가득 찬다. 그것들은 봄 볕처럼 부드럽고, 매화처럼 시리게 분명한 그녀의 마음을 담고 있다.
2007 02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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