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삽입 이미지

김정한

하이웨이.

린넨에 오일페인팅.

 2006.


아침 일찍 리노를 벗어나, 미국에서 번째로 인터스테이트 하이웨이80(제일 인터스테이트 하이웨이는? 인터스테이트 90.) 타고 네바다 주를 쉬지 않고 달린다. 끝없이 펼쳐지는 . 밑으로 깊게 꺼진 다른 지반. 나무가 없는 산들은 잡초로 덮여 있다. 지평선이 멀리 누워있다. 아파트 단지와 공장들이 즐비하게 누워 바쁘게 뒤로 넘어가는 경부 고속도로를 따라가는 기분과 다르다. 속도도 다르다. 제한 속도 70 마일( 112 킬로미터), 대부분의 차들이 80마일( 128킬로미터) 위아래로 흘러간다.

네바다 중간, 사막, 초원의 중간 지점에 누워있는 삭막한 재색 건물 교도소는 고속도로 듬성듬성 자리한 힡치 하이킹(Hitch Hiking) 금지 사인으로 다가온다. 고속도로 옆으로 늘어진 철도 위를 기어가는 화물 기차는 길다고 생각했던 아홉 칸짜리 바트를 아기 기차처럼 만들고 설설 기어간다. 기차 옆으로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 덤비는 얼핏 서부영화의 기차 강도들, 광야를 달리는 인디언들, 카우보이들의 모습이 뇌리에 스친다.   

              팍팍하게 내리쬐는 . 먼산에 불을 알리는 잿빛 연기 기둥. 산만큼 구름들이 정지해 떠있다. 시간은 서있고, 차만 날아가는 달린다.

네바다 북동부에 자리한 엘코(Elko) 지나자 먼지가 짙으니 전조등을 켜라는 사인이 보인다. 그런가 보다 하는 , 어느 새인지 주위 경관이 바뀌어 있다. 옅은 회색의 먼지들이 안개처럼 대기에 가득 퍼져 있다. 대기 너머로 태양은 높이 붉다. 바위 산이 하나 다가온다. 주변을 빽빽하게 가득 채운다. 뒤로 차가 보이지 않는다. 현실감이 옅어진다. 바위들은 마치 누군가가 일부러 하나씩 하나씩 소원을 빌며 쌓아놓은 탑처럼 겹쳐져 솟아있다. 크기와 높이가 물론 사람이 맨손으로 어쩔 있는 것이 아니다. 눈길이 있는 곳들은 모두 바위 같은 산들이고 바위 덩어리들이다.

웰스(Wells) 근처로 다가서니 돌산들이 하나 사라진다. 먼지도 걷혀 해가 색을 찾았다. 네바다가 끝나기 마지막 도시 웰스. 그래도 네바다의 도시이기에 카지노가 있다. 여기에서 인터스테이트 80번을 뒤로 하고 아이다호 주로 향하는 유에스 루트95 (U.S. Route 95) 올라탔다.

도로 풍경은 전형적인 미국 농촌이다. 대형 유조차 기름통과 비슷한 크기의 바퀴들 중간 축이 물을 뿌리는 파이프다. 바퀴들의 규모가 밭의 규모를 알려준다. 밭은 느릿하게 오르락 내리락 거리는 동산을 낮게 따라 흐르는 아기 같은 녹색들이다. 넓고 한가한 녹색들 위로 간혹 볼록 튀어나온 뭔지 궁금한 원기둥 모양 알루미늄 건축물 근처에는 젖소 떼가 있다. 동산들 저기 한쪽에서 텔레토비들이 숨어서 놀고 있을 같다.

              아이다호 주에 다가갈수록 땅이 점점 낮아진다. 해는 낮아지고 하늘이 높아진다. 피곤이 목뒤에 진하게 자리잡는다. 와이오밍 주의 잭슨이, 생각으로는 옐로우 스톤 공원을 들려 내려가면 바로 보일 듯하다. 개인전 리셉션으로 향하는 여행길 하루는 잠들고 있는 아이다호 주의 포카텔로 시에서 마무리 한다.

2006년 9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지올지오 디크리코(Giorgio DeChirico)
안드로마쉬(Andromache)


샌프란시스코 출발, 네바다, 아이다 호, 몬 타나, 와이오밍 주의 잭슨을 찍고 돌아온 왕복 2400마일의 여행. 마일리지 중간에 정점으로 찍히는 곳, 빙하로 덮였다 녹았던 곳은 땅밑으로 꺼져, 산들을 치켜세우는 곳, 그랜드 테턴 산. 북미 대륙에서 록키 마운틴과 어깨를 겨루고 있다.

북쪽으로 옐로우 스톤 공원에 들어가면 큰 사슴(moose)들과 들소(bison)들이 초원에서, 강 옆에서, 노니는 혹은 널브러져있는 모습이 쉽게 보인다. 유황천이 바위를 녹여 고운 회색 진흙 방울을 터트리는 모습도 일품이다.

그곳에 가기 길에 타호 호수를, 지구 온난화 현상으로 예전의 맑고 투명한 표면이 점점 불투명해지는 타호 호수를 지나, 리노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일 하루를 보냈다.

리노 다운 타운 근처에서 방을 빌리려다, 우연히 본 이름을 잊어버린 호텔. 담배 냄새가 진하게 밴 사무실, 슬그머니 내 모습을 위에서 아래도 흘려본 뒤 먼저 방을 확인하고 빌리라는 직원의 말을 따라, 사층으로 올라가려 찾아가 바라본 엘리베이터. 문 옆 엘리베이터를 세우기 위해 자리한 버튼. 버튼은 알루미늄 판에서 빠져 마치 맹인의 눈처럼 휑하게 다른 세상의 시작을 알렸다. 악몽이 시작되는 혹은 가위가 눌리기 시작할 때의 차가운 느낌이 차갑게 맴돈다.

엘리베이터 위 불이 켜지는 번호들이 고장 나 내려오는지 올라오는지 알 수 없는 엘리베이터가 삐그덕거리며 열리며 퍼져 나오는 악취. 두 명의 칼칼하게 마른 피부, 버석거리는 블론디 머리 백인 여자들이 걸어 나왔다. 아무 생각 없이 코를 찡그리고 쇠 상자 안으로 발을 내밀었다. 방을 보려고 4층으로 간다. 상자 안에서 4 옆에 있는 볼록 튀어나와 있는 두툼한 붉은 플라스틱 버튼을 눌렀다. 문이 닫히기 전, 코가 긴 오십 중반 정도의 여자가 작은 개를 한 마리 안고, 여자 아이 나타났다. 개가 꼭 여자와 닮았다. 악취가 익숙해질 만 할 때, 새로운 악취, 기묘한 땀냄새에 버무려진 싸구려 향수, 가 새롭다. 크게 덜컹거리면 시작해서 올라가는 쇠 상자에 갇혔다.

엘리베이터를 지나 복도를 걷는다. 복도들은 커다란 상자의 네 면에 달라붙어있어서, 그 안에 사각 공간이 남겨져 있다. 사층 복도에서 건물 안에 자리잡고 있는 사각 공간을 내려다본다. 까마귀 떼가 앉아서 카카 거릴 것 같은 오래된 남루한 공간. 텅 비어 있다. 텅 비어 있음이 공간의 진실이라고 하지만, 이곳은 비어있어도 비어있지 않다. 눈에 띄는 간판 하나. "아이들만 내놓지 마시오."

한 면을 돌아, 다른 면으로 걷는다. 여기저기 더위 탓에 방문들이 열려있다. 사람들의 눈빛은 마주치지 않아도 느껴진다. 문신이 새겨져 있는 팔들은 오히려 인간답다. 텔레비전 소리가 나는 방 안에서 두 명의 남자들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조심스럽게 눈길을 피한다. 얼핏 그들의 실루엣이 드 크리코의 그림 같다. 

찾던 방은 두 남자들이 있던 방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칙칙한 누런 색 벽. 허물어진 침대. 또 다른 종류의 악취가 배겨져 있는 화장실. 머리 속에서 무언가가 핑 돈다. 리노의 싸구려 호텔 사 층에서 도박의 어두운 얼굴을 바라보았다.

엘리베이터로 돌아와 내려오는 길, 삼 층에서 인지, 이 층에서 인지, 문이 열리고 하이하고 들어오는 중년 남자의 모습은 땀냄새와 빨지 앉은 옷 냄새로 가려진다.

2006년 8월

뼈와 근육의 이야기

그림들/sf 중앙일보 2007. 2. 26. 10:08 posted by 긴정한
사용자 삽입 이미지


레오나르도
다빈치

목과 어깨의 근육들.

1515

펜과 잉크, 검은 분필

세로 길이 29.2 cm



학교에서 가까스로 얻어낸 강의가 미술 해부학이다.  처음에 얼마나 버벅거렸는 지금 생각해도 민망하다.  어쨌든 수업이 많이 지루하다.  공부하는 그림들은 인체에서 피부를 벗기고 지방을 떼어낸 근육들과 뼈들이다.   그림들 옆에 서있는 글자들, 근육들과 뼈들의 이름들은 라틴, 고대 로마 언어이다.  단어도 그림도 모두 생소하니 어지간하게 호기심이 많지 않은 소수의 학생들을 제외한 대다수의 학생들은 쉽게 생각에 빠져든다.  학생들 입장에서는 따분하다고 소문난 해부학을 피해가고 싶어도 필수 과목이니 그럴 수가 없다.

가르치는 선생으로서, 인체를 그리는 화가로서 사람을 주제로 그림을 그릴 해부학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해도, 세상에 있는 학생들의 시선을 교실로 끌고 오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래서 궁리 끝에 가끔 하는 이야기가 요즘 그림을 공부하는 학생들은 얼마나 운이 좋은 가이다.

              고대 로마에서 그림을 공부하던 학생들은 재능을 인정받기 위해서 이년 동안 원기둥, 삼각뿔, 육면체 기본 정물만을 그리는 훈련을 했다.   기간 동안 재원으로 발탁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인체 조각 그리기. 훈련 기간은 .  다시 손과 얼굴에 목탄을 묻혀가며, 실증에 눌리지 않고 재능을 갈고 닦아서 다음 단계로 넘어갈 자격을 얻으면 비로서 모델을 보고 그림을 그릴 있는 영예를 누르게 된다.   영예는 당대의 유명 화가들에게 선택되어 그들을 도울 있는 도제가 되는 발판이다.  가까스로 도제 생활이 시작되면, 마스터를 도와 그림 인물의 가장 하찮은 부분을 그린다.   그리기 혹은 배경의 일부 그리기.  그린 발이 마스터의 눈에 벗어나지 않아, 도제 생활이 무난하게 지속되면 손도 그릴 있게 된다. 후배 도제들도 만난다.  그리고 그들을 지시할 있는 권위가 생긴다.  그렇게 마스터를 위해 그림을 그리고, 배우며, 미술계에서 이름을 퍼트린다.  그러다 운이 닿아 그림 주문을 얻으면 자기 이름을 걸고 그림을 그릴 있다.  

그러니 자기 이름으로 그림을 그리기 위해 힘든 과정을 지내며,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이라도 낳은 인물과 인체를 그리기 위해 해부학을 공부하는 학생의 반짝이는 눈빛은 어렵지 않게 상상이 된다.  

시간을 조금 뒤로 돌려 르네상스 시대의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해부학 스케치들을 보자.  신이 디자인한 구조, 인체를 기계로서 공부하는 길은 신을 공부하는 다른 길이다.  천재의 눈에 보이는 인체의 구조는 영감 자체이다.  다빈치는 심지어 그의 공부를 다른 사람들에게 노출시키기 싫어서 자기만의 방법으로 글을 적어놓았다.  

정도 이야기하면 대다수 학생들의 생각을 교실 안으로 끌어올 있다.  그리고 이런 이름, 저런 근육 이름을 입에 담으면 하나 둘씩 멀어져 가는 학생들의 시선.   학기 기본 정물을 그리고, 다음 학기에 미술 해부학을 필수로 들으며 다른 생각 없이 모델을 그리는 학생들, 로마에서 그림을 배웠던 학생들이 생각한다면, 충격적으로 운이 좋은 지금의 학생들은 대부분 가지 공통된 생각을 한다.   수업을 번에 통과해서 다시 지루한 수업을 듣는 일은 없어야 한다라는 생각.

학기 말이 되면 학생들에게 잊지 말고 하는 마디. 마치 뼈가 없으면 근육이 붙일 곳이 없으니 움직일 수도 없고, 인체로서 모양을 수도 없는 것처럼 기본이 튼튼하지 않으면 좋은 그림이 나오기 힘들다.  세상 모든 일이 그런 것처럼



2006년 8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