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오밍주 잭슨 홀 호라이즌 갤러리로: 전시여행 04

김정한,

테턴 국립 공원 산들

여행 사 일째 아침. 옐로우스톤 국립공원 서쪽 입구의 마을에서 상큼하게 눈을 뜬다. 시계 방향으로 공원을 돌아내려가, 그랜드 테턴 국립공원을 지나, 잭슨, 와이오밍으로 향한다. 옐로우스톤의 그랜드 캐넌을 기점으로 동서의 지형이 크게 다르다. 서쪽의 늪지와 가파르게 메마른 나무들로 뒤 덮인 산들, 어슬렁거리는 큰 사슴(moose)들은 동쪽의 넉넉한 초원과 들소(bison)들, 창연한 옐로우스톤 강으로 대치된다. 다가서다 멀어지며 운전 동무로 흐르던 강은 시야를 트이며 옐로우스톤 호수로 변한다. 이 호수는 다자란 청년이요,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미러 호수(Mirror Lake)는 돌 지나기 전 아기다.  레이크 타호(Lake Tahoe)와 비슷한 규모. 호수는 뱀강(Snake river)으로 이어지고 잭슨 호수(Jackson lake)가 뒤따른다. 녹색의 향연은 모랜 산(Mount Moran)과 그랜드 테턴(Grand Teton)으로 이어진다. 청아한 호수와 청량한 산 정상 만년설. 풀 진한 싱싱한 공기. 천의무봉(天衣無縫)이다.

              산들을 지나자 곧 잭슨이다. 설악산 옆 속초가 생각나지만 바다는 없다. 도시는 작지만, 길과 집들이 아기자기하게 디자인되고 꾸며져서, 도시를 둘러쌓고 있는 산들에 찍힌 연지며 곤지 같다. 쫙쫙 넓게 퍼진 전형적인 미국 도시의 디자인과 딴 판. 오히려 유럽풍이다. 도시 어디에서나 보이는 스키 슬로프가 겨울의 잭슨을 궁금하게 하고, 스위스의 알프스가 연상되지만 지금 이곳은 여름이다. 호텔 직원 말로는 겨울이 더 기가 막힌단다. 호텔 직원이 하는 말이었거니 싶지만, 솔깃해진다.

              갤러리 주인이 예약을 해준 호텔의 방은 다시 한 번 통나무 집안에 있다. 옐로우스톤의 통나무 집보다 많이 젊다. 집은 산 자락 아래 자리 잡혀있다. 높은 산 자락과 낮은 통나무집 사이에 작은 강이 초연하다. 방문 앞 사려 깊은 발코니에 놓인 테이블에 앉으니 눈은 호강이고 여독은 낮은 숨소리로 삭아 든다. 때마침 지는 해를 따라 도는 길고 발그스레한 자색 볕이 산 자락을 덮고 자란 재색 낀 잔디며 잡초들과 어우러진다. 아름답기가 상상을 벗어난다. 그림 안에 앉아있는 듯 하다. 이런 시간에 반해서 뉴욕, 샌프란시스코에서 이사해왔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당연스럽다. 인상파 화가 클라우드 모네(Claude Monet)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화가가 되고 싶다면 자연으로 다가서라. 자연을 보고, 이해하고, 그림을 그려라. 그렇게 공부를 하는데 그림이 늘지 않는다면, 붓을 놓으시길. 왜냐하면 당신은 가장 뛰어난 선생님에게 그림을 배우지만, 진전이 없으니 재능이 없는 거지.”

              혹시나 해서 번화가를 돌아다니며 부동산 가게에 붙은 매물들을 찾아봤다. 백 만불 아래의 집이 없다. 흠. 슬그머니 늦은 시간까지 문을 연 갤러리들로 발길을 돌린다. 작은 도시지만 이 곳은 예향(藝鄕)이다. 이름난 갤러리들이 즐비하고, 그 안에 명성이 있는 화가들의 그림은 이곳의 집들만큼이나 비싸다. 그래도 부자들이 그림을 사는 걸 최고의 취미로 즐기는 이유는 사람들을 초대해 자신의 취향을 한껏 자랑하고, 더불어 시간이 갈수록 값이 오르는 미술품들의 투자 측면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갤러리들은 돈이 모인 곳에 자리하기가 십상이다. 상대적으로 소수의 유명 화가들은 그 틈에서 신이 나지만, 셀 수 없이 많은 신진 작가들은 유명 화가들이 점유하는 80 퍼센트의 시장을 뺀, 20 퍼센트의 작은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진땀을 흘린다. 그리고 내일 저녁에는 이곳에서 처음으로 본인의 개인전 리셉션이 벌어진다.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타날까? 그 중 어떤 사람들이 내 그림들을 집안에 걸어놓고 취향을 자랑하려나?

2006년 10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