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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한,

테턴 국립 공원 산들


여행 일째 아침. 옐로우스톤 국립공원 서쪽 입구의 마을에서 상큼하게 눈을 뜬다. 시계 방향으로 공원을 돌아내려가, 그랜드 테턴 국립공원을 지나, 잭슨, 와이오밍으로 향한다. 옐로우스톤의 그랜드 캐넌을 기점으로 동서의 지형이 크게 다르다. 서쪽의 늪지와 가파르게 메마른 나무들로 덮인 산들, 어슬렁거리는 사슴(moose)들은 동쪽의 넉넉한 초원과 들소(bison), 창연한 옐로우스톤 강으로 대치된다. 다가서다 멀어지며 운전 동무로 흐르던 강은 시야를 트이며 옐로우스톤 호수로 변한다. 호수는 다자란 청년이요,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미러 호수(Mirror Lake) 지나기 아기다.  레이크 타호(Lake Tahoe) 비슷한 규모. 호수는 뱀강(Snake river)으로 이어지고 잭슨 호수(Jackson lake) 뒤따른다. 녹색의 향연은 모랜 (Mount Moran) 그랜드 테턴(Grand Teton)으로 이어진다. 청아한 호수와 청량한 정상 만년설. 진한 싱싱한 공기. 천의무봉(天衣無縫)이다.

              산들을 지나자 잭슨이다. 설악산 속초가 생각나지만 바다는 없다. 도시는 작지만, 길과 집들이 아기자기하게 디자인되고 꾸며져서, 도시를 둘러쌓고 있는 산들에 찍힌 연지며 곤지 같다. 쫙쫙 넓게 퍼진 전형적인 미국 도시의 디자인과 . 오히려 유럽풍이다. 도시 어디에서나 보이는 스키 슬로프가 겨울의 잭슨을 궁금하게 하고, 스위스의 알프스가 연상되지만 지금 이곳은 여름이다. 호텔 직원 말로는 겨울이 기가 막힌단다. 호텔 직원이 하는 말이었거니 싶지만, 솔깃해진다.

              갤러리 주인이 예약을 해준 호텔의 방은 다시 통나무 집안에 있다. 옐로우스톤의 통나무 집보다 많이 젊다. 집은 자락 아래 자리 잡혀있다. 높은 자락과 낮은 통나무집 사이에 작은 강이 초연하다. 방문 사려 깊은 발코니에 놓인 테이블에 앉으니 눈은 호강이고 여독은 낮은 숨소리로 삭아 든다. 때마침 지는 해를 따라 도는 길고 발그스레한 자색 볕이 자락을 덮고 자란 재색 잔디며 잡초들과 어우러진다. 아름답기가 상상을 벗어난다. 그림 안에 앉아있는 하다. 이런 시간에 반해서 뉴욕, 샌프란시스코에서 이사해왔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당연스럽다. 인상파 화가 클라우드 모네(Claude Monet) 이야기가 떠오른다. “화가가 되고 싶다면 자연으로 다가서라. 자연을 보고, 이해하고, 그림을 그려라. 그렇게 공부를 하는데 그림이 늘지 않는다면, 붓을 놓으시길. 왜냐하면 당신은 가장 뛰어난 선생님에게 그림을 배우지만, 진전이 없으니 재능이 없는 거지.”

              혹시나 해서 번화가를 돌아다니며 부동산 가게에 붙은 매물들을 찾아봤다. 만불 아래의 집이 없다. . 슬그머니 늦은 시간까지 문을 갤러리들로 발길을 돌린다. 작은 도시지만 곳은 예향(藝鄕)이다. 이름난 갤러리들이 즐비하고, 안에 명성이 있는 화가들의 그림은 이곳의 집들만큼이나 비싸다. 그래도 부자들이 그림을 사는 최고의 취미로 즐기는 이유는 사람들을 초대해 자신의 취향을 한껏 자랑하고, 더불어 시간이 갈수록 값이 오르는 미술품들의 투자 측면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갤러리들은 돈이 모인 곳에 자리하기가 십상이다. 상대적으로 소수의 유명 화가들은 틈에서 신이 나지만, 없이 많은 신진 작가들은 유명 화가들이 점유하는 80 퍼센트의 시장을 , 20 퍼센트의 작은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진땀을 흘린다. 그리고 내일 저녁에는 이곳에서 처음으로 본인의 개인전 리셉션이 벌어진다.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타날까? 어떤 사람들이 그림들을 집안에 걸어놓고 취향을 자랑하려나?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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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한도(歲寒圖)
추사 김정희

종이에 수묵
23cm x 69.2cm
1844(
헌종 10)

개인 소장



전날 리노에서 포카텔로까지 580마일 가량을 달린 후유증으로 느즈막이 눈이 떠진다. 먼지와 벌레들로 샤워를 듯한 . 텁텁하다. 문을 열고 시동을 건다. 본격적으로 달리기 전에 주린 배를 채우려 들른 레스토랑. 냄새, 햇볕으로 베인 주름 가득한 노인들이 곳곳에 앉아 커피며 케잌을 늘어놓고 먹고 마신다. 가정 주부처럼 푸짐하게 푸근한 웨이트레스들이 지나치며 커피를 부어줄 때면 농담을 던지며 오전을 즐긴다. 

옐로우스톤 국립 공원에 다가갈수록 녹음이 짙어진다. 땅이 높아지고 귀가 멍하다. 위에, 옆에 알뷔(Recreational Vehicle)들과 오토바이 족들이 즐비하다. 승용차로 가득 도시에 살아온 이의 눈에 생소한 모습이다. 가의 주유소들이 샌프란시스코보다 저렴하다.

가볍게 시간 안쪽의 운전으로 공원 서쪽 입구에 옐로우스톤(West Yellowstone)이라는 작은 마을에 도착한다. 관광객들 때문에 생긴 듯한 마을은 가벼운 산보로 이쪽 경계에서 저쪽 경계까지 있을 정도로 아담하다. 우연히 빌린 숙소는 오래된 통나무집이다. 커튼을 치면 집밖의 밤낮을 없다. 에어컨이 없지만 넓은 통나무들이 더위를 쉽게 차단한다. 서늘하기가 생각보다 심해서, 집의 나이를 생각하니 으스스하다. 한옥이나 서양 집이나 오래된 집은 과거와 영혼을 가지고 있는 하다. 집안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휴식을 취하고 잠을 청하고 상상할 없을 만큼의 생각을 했을까? 현관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울창한 숲이 없는 생각에 마침표를 찍으며 생소하다. 문득 서늘한 집이며 뾰족한 나무들로 세한도 그려진다. '추운 겨울에 소나무와 잣나무의 변함없는 푸르름을 있다 '논어 구절에서 이름 지워진 추사 정희 그림. 추사가 이곳에 묵었다면, 옐로우스톤 공원을 둘러본다면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일이 일어날까?

              공원 입장권은 25, 일주일 동안 사용할 있다. 서쪽 입구에서 동북쪽으로 올라간다. 길가에 메마른 쓰러져있는 수많은 나무들. 초원 위에 듬성듬성 누워있는 늪지들. 길옆에 정차하고 야생 동물을 보는 사람들. 찻길 옆을 따라 흐르는 개울에 들어서 송어 낚시를 하고 있는 사람들.

공원은 야생 동물들을 철조망이나 유리벽 없이 직접 마주 대할 있는 기회를 준다. 사슴(moose)들과 들소(bison)들은 쉽게 눈에 띄고, 운이 좋으면(?) 곰도 있단다. 3백여 간헐천이 여기 저기에서 유황 냄새를 풍기고 북미 최대의 산중 호수가 공원 남동쪽에 누워있다.

공원 북부 중간에 자리한 옐로우스톤의 그랜드 캐넌. 조망대까지 차를 몰고가 주차하고, 산책로로 걸어 들어간다. 갑작스런 낭떠러지. 현기증을 뒤로 넘기고 난간 밑을 바라본다. 멀리10 방향과 2 방향에 다른 낭떠러지들이 벌어져 있다. 자연이 커다란 칼로 고원을 깊게 베어냈다. 낭떠러지들 사이 날카롭고 가파르게 파인 계곡의 바닥에 짙은 청자 강물이 새하얀 거품을 일으키며 세차게 흐른다. 절경이다.

              공원을 하루에 둘러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쯤에서 숙소로 돌아간다. 내일을 계획하고 휴식을 취한다. 아쉽지만 내일 저녁이면 옐로우스톤 공원을 벗어나 그랜드 테턴 국립 공원을 지나 와이오밍 주의 잭슨 시에 도착할 예정. 잭슨 시는 어떤 모습일까? 전화로만 만나던 갤러리 주인이며 갤러리는 어떤 곳일까? 전시는 진행될까? 정적이 무겁게 내려앉는 공원 마을 숙소에서, 목뒤로 긴장과 가벼운 흥분이 교차한다.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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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한

하이웨이.

린넨에 오일페인팅.

 2006.


아침 일찍 리노를 벗어나, 미국에서 번째로 인터스테이트 하이웨이80(제일 인터스테이트 하이웨이는? 인터스테이트 90.) 타고 네바다 주를 쉬지 않고 달린다. 끝없이 펼쳐지는 . 밑으로 깊게 꺼진 다른 지반. 나무가 없는 산들은 잡초로 덮여 있다. 지평선이 멀리 누워있다. 아파트 단지와 공장들이 즐비하게 누워 바쁘게 뒤로 넘어가는 경부 고속도로를 따라가는 기분과 다르다. 속도도 다르다. 제한 속도 70 마일( 112 킬로미터), 대부분의 차들이 80마일( 128킬로미터) 위아래로 흘러간다.

네바다 중간, 사막, 초원의 중간 지점에 누워있는 삭막한 재색 건물 교도소는 고속도로 듬성듬성 자리한 힡치 하이킹(Hitch Hiking) 금지 사인으로 다가온다. 고속도로 옆으로 늘어진 철도 위를 기어가는 화물 기차는 길다고 생각했던 아홉 칸짜리 바트를 아기 기차처럼 만들고 설설 기어간다. 기차 옆으로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 덤비는 얼핏 서부영화의 기차 강도들, 광야를 달리는 인디언들, 카우보이들의 모습이 뇌리에 스친다.   

              팍팍하게 내리쬐는 . 먼산에 불을 알리는 잿빛 연기 기둥. 산만큼 구름들이 정지해 떠있다. 시간은 서있고, 차만 날아가는 달린다.

네바다 북동부에 자리한 엘코(Elko) 지나자 먼지가 짙으니 전조등을 켜라는 사인이 보인다. 그런가 보다 하는 , 어느 새인지 주위 경관이 바뀌어 있다. 옅은 회색의 먼지들이 안개처럼 대기에 가득 퍼져 있다. 대기 너머로 태양은 높이 붉다. 바위 산이 하나 다가온다. 주변을 빽빽하게 가득 채운다. 뒤로 차가 보이지 않는다. 현실감이 옅어진다. 바위들은 마치 누군가가 일부러 하나씩 하나씩 소원을 빌며 쌓아놓은 탑처럼 겹쳐져 솟아있다. 크기와 높이가 물론 사람이 맨손으로 어쩔 있는 것이 아니다. 눈길이 있는 곳들은 모두 바위 같은 산들이고 바위 덩어리들이다.

웰스(Wells) 근처로 다가서니 돌산들이 하나 사라진다. 먼지도 걷혀 해가 색을 찾았다. 네바다가 끝나기 마지막 도시 웰스. 그래도 네바다의 도시이기에 카지노가 있다. 여기에서 인터스테이트 80번을 뒤로 하고 아이다호 주로 향하는 유에스 루트95 (U.S. Route 95) 올라탔다.

도로 풍경은 전형적인 미국 농촌이다. 대형 유조차 기름통과 비슷한 크기의 바퀴들 중간 축이 물을 뿌리는 파이프다. 바퀴들의 규모가 밭의 규모를 알려준다. 밭은 느릿하게 오르락 내리락 거리는 동산을 낮게 따라 흐르는 아기 같은 녹색들이다. 넓고 한가한 녹색들 위로 간혹 볼록 튀어나온 뭔지 궁금한 원기둥 모양 알루미늄 건축물 근처에는 젖소 떼가 있다. 동산들 저기 한쪽에서 텔레토비들이 숨어서 놀고 있을 같다.

              아이다호 주에 다가갈수록 땅이 점점 낮아진다. 해는 낮아지고 하늘이 높아진다. 피곤이 목뒤에 진하게 자리잡는다. 와이오밍 주의 잭슨이, 생각으로는 옐로우 스톤 공원을 들려 내려가면 바로 보일 듯하다. 개인전 리셉션으로 향하는 여행길 하루는 잠들고 있는 아이다호 주의 포카텔로 시에서 마무리 한다.

2006년 9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