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 메이멩:예스!가 열리고 있는 월터 앤드 맥빈 갤러리스(Walter and McBean Galleries). 사진 김정한. 그림 저작권은 화가 얀 페이밍에게 있음.



샌프란시스코 아트 인스티튜트(San Francisco Art Institute, 800 Chestnut, SF 415. 749.4563)안에는 개의 갤러리가 있다; 디에고 리베라 갤러리와 월터 앤드 맥빈 갤러리스(갤러리는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열린다).  디에고 리베라의 벽화가 그려져 있는 디에고 리베라 갤러리에서는 주로 샌프란시스코 아트 인스티튜트 학생들의 작품이 전시된다.  월터 앤드 맥빈 갤러리스에서는 5 23일까지 페이밍: 예스! (YAN PEI-MING:YES!) 전시된다.

          얀의 전시는 처음 접했다.  전시 도록을 따르면 그는 1960년에 중국 상하이에서 태어나, 1980년에 프랑스로 이주한 프랑스 화단에 스타로 떠올랐단다.  세계 미술계의 주목을 받은 그림들은 정치인과 문화인들을 커다랗게 그린 초상화들이다.  예를 들자면, 모택동, 교황 2, 이소룡, 무명의 창녀들, 자화상, 얀의 아버지, . 

          1970년대를 중국에서 지냈으니 문화혁명의 영향을 받았겠고, 인터넷에서 얼핏 본 교황의 그림은 프란시스 베이컨의 영향을 강하게 보여준다.  이소룡의 그림은 아직 찾아보지 않았지만, 제목만으로 앤디 와홀의 엘비스 프레슬리를 연상시킨다.  1980년에 시작된 프랑스 파리(Paris)에서의 생활은 곧 정리되고 1982년부터 프랑스의 다른 도시 디젼(Dijon)에서 지금까지 살고 있다. 

갤러리로 돌아가자.  월터 앤드 맥빈 갤러리스에 걸려진 그림들은 커다란 군인들의 초상화(98.5x75 inches) 3점으로 시작된다.  그 오른쪽 옆으로 지금은 대통령인 오바마의 초상화(그림은 2008년에 만들어졌다)가 뒤를 따른다.  오바마의 뒤를 이어 전시장 이층에 나열된 그림들은 미국의 초석을 다진 대통령과 미국 역사에 굵직한 선을 그은 대통령들의 초상화들이다.  작고한 대통령들의 영향력은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남아서 아침 점심 저녁으로 우리는 그들의 얼굴을 담고 있는 화폐들을 주고 받는다.  

초상화들 중 살아있는 사람의 얼굴은 오바마가 유일하다.  3명의 군사들은 각자 다른 개인적인 표정을 보여주지만, 그 표정들 뒤로는 커다랗고 공통적으로 읽혀지는 이라크 전과 죽음이 강하게 묘사되어 있다.  쉽게 두 가지가 공감되는 이유는 8년 동안이라는 긴 시간 동안 부시 정권에 시달린 사람들이 미국인들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적어도 미국 서부의 한 도시와 프랑스 동부의 한 도시가 밀접하게 연결이 되어있다.  덕분에 중국태생 프랑스인과 한국태생 미국 영주권자가 죽음에 대한 한 단면을 공유한다.

짐작으로 끝날 수 도 있었던 이라크 전과 죽음에 대한 연상은, 전시장 일층과 이층 사이에 자리잡고 있는 작은 방에 걸려져 있는 병사들의 관들을 그린 그림으로 구체적으로 현실화된다.  슬그머니 안도의 숨소리가 잴 수 없었던 상상의 어두운 범위를 벗어난다.  현실은 시간이 지나면 잊을 수도 있고, 이리 저리로 도피할 수도 있고, 혹은 맞닥뜨릴 수도 있다.  안도는 관들이 그려진 그림과 맞서있는 아기들의 그림들을 바라보면서 방향을 튼다.  마음에 남는 것은 생과 사에 대한 또 21세기 초의 조명.  도대체 이 이중구조는 몇 천년을 지나고도 살아남아있으니 그것을 다시 대할 때마다 스물 스물 피어오르는 피곤함은 지루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 영구적이다. 

그 이중구조가 동전의 한 면을 차지하고 있다면, 다른 한 면은 왕들과 군사들, 삶과 죽음의 간극을 메우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셀 수 없이 많고 다양한 초상들이다.  평범하게 살기(YES!)가 어려운 21세기 초를 살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에 대한 상상이 현실과 버무려져, 담겨 자라나는 전시장은 월터 앤드 맥빈 갤러리스의 투명한 유리벽 밖에 펼쳐져 있다.


3/15/09

화가의 일상

그림들/sf 중앙일보 2009. 2. 22. 04:24 posted by 긴정한

Josephine Taylor, Bomb Landscape 3. Sumi ink, colored ink and colored pencil on paper. 93 ¾ x 76 ½ inches. Copyright Artist



화가가 얼마나 침울해질 있는 지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화가는 그가 좋아하거나 말거나, 골목 길가에 쓰레기통을 뒤지는 고양이만큼 혹은 고양이 보다 예민하게 태어난다.  그들은 일년의 태반 이상을 자신들이 만들어가는 그림을 예민하게 쬐려 보고, 한탄하고, 화를 내며 작업실 문을 요란스럽게 닫고 거리로 나간다, 마치 다시는 작업실로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작업실 밖의 세상에서 화가에게 제일 궁금한 것은 다른 화가들의 작업들이다.  그러니 화가는 그가 살고 있는 도시의 갤러리들이며 뮤지엄들을 들락거리게 된다.  그렇게 발을 옮겨 놓은 갤러리에서 좋은 작품들을 만나게 되면, 다시 가슴이 뜨거워지고, 작업을 하고 싶은 욕구가 느껴진다. 

죠세핀 테일러(Josephine Taylor) 작품들은 종이에 먹과 칼라 잉크, 그리고 하얀 연필로 만들어진다.  그녀의 그림들은 , 체액, 끈으로 연결되는 육체적 관계를 다룬다. 근자에 들어 관계들은 강한 먹색이 지배하는 공간에 자리잡는다.  먹으로 채워진 공간을 벗어난 곳에 단조로운 살색들이 어두워지고 밝아지면서 이목구비, 손가락, 발가락 눈에 익은 모습들을 묘사한다.  이목구비들은 여러 가지 긴장된 감정들을 보여준다. 

그녀 작품의 기둥은 드로잉이다.  그녀는 자신의 드로잉이 가지고 있는, 관객의 관심을 끌어내는 힘을 통해 관객에게 자신의 경험을 전달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녀는 경험이 그녀가 자라나면서 느꼈던 사랑과 증오를 쌍으로 하는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당연히 관객으로서 그녀의 그림을 즐길 , 그녀의 이야기는 그림을 이해하는 여러 가지 방법 , 가지 방법일 , 더도 덜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림들이 가지고 있는 치열함과 농밀함(그것들을 그림에 담아낸 그녀에게 찬사와 경의를!) 이야기로 우려내는 길은 관객들의 몫이다.  그녀의 그림들은 캐더린 클라크 갤러리(Catharine Clark Galley, 150 Minna St. San Francisco) 안쪽에 3 초까지 걸려진다.

갤러리들을 돌아다니고, 친구를 만나며 겨우 며칠이 지나면 화가는 다시 작업실 문을 열고, 그리다만 그림에 눈을 맞추고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그림을 그리면 좀이 쑤시는 것이다.  신이 내린 무당이 굿을 안하면 몸이 쑤시는 것처럼 말이다. 

            침울한 시간들로 작업실이 홍수지는 것만은 아니다.  그림을 그리고 그리다가 보면 아주 간혹 그림에 몰입되어 황홀한 순간이 찾아온다. 일년에 정도.  순간만큼은 세상 누구도 부럽지 않다.  그리고 순간이 담겨진 그림은 명화라고 확신한다.  그런데 순간도 , 달이 지나, 순간이 담겨진 그림을 보면, 단순한 자아도취였을 경우가 많다.  황당함은 누구한테 하소연할 수도 없다.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혼자 씁쓸해지기 쉽상이다.  이런 경험을 번하고 화가에게, 센트 고흐(Vincent Van Gogh) 인생을 이해하는 것이 그렇게 힘든 일이 아니다.  단지 테오 고흐 같은 사람은 자신의 인생에 어디 있을까한다. 

            그런 여러 가지 경험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재능과 그림에 확신을 유지할 있는 화가들은 계속해서 끊임없이 작업실 문을 연다.  세계 경제가 불황이라도 문을 연다.  급작스럽게 경매 회사 소더비(Sotheby’s) 주가가 크게 떨어진 , 다른 경매회사 크리스티(Christie’s) 조직 재편, 뉴욕 첼시의 화랑들이 커다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부담스러운 현실이다.  그것이 작업실 문을 여는 빈도수를 떨어뜨릴 수는 있겠지만, 문은 계속 열린다. 


2/21/09

김정한, 포트 마일리에서 본 태평양, 20”x60”, 아마포 위에 아크릴릭과 오일 페인츠


년을 넘게 축구를 함께 하던 친구가 며칠 전에 갑자기 샌프란시스코를 떠나 텍사스 주의 댈라스로 이사를 간다고 말을 건네왔다.  동안 매주 일요일 아침마다 만나서 공을 차고 달리고, 게임이 끝나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것들이 당연한 것이라고 여겼던 분명한 , 떠난다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란 가슴으로 있다.  (삼 년 전에 축구를 시작했을 때에는, 얼마나 공을 못찼는 지, 어쩌다 패스를 받아서 공이 발 안에 있으면, 혼자서 어쩔 줄 모르다 상대팀 선수에게 그냥 넘겨주고 어떻게 한 번 다시 뺐아 볼까 하면서 무턱대고 달리기만 했었다.  그래도 비슷하게 못하는 친구가 있어서 그냥 저냥 버티며 삼년을 지내왔는데.)  떠난다는 말을 듣기 분전까지만 해도 당연히 언제까지고 매주 일요일 아침마다 축구를 함께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샌프란시스코 시내에서부터 기어리 블라바드(Geary Blvd.) 타고 서쪽으로, 그러니까 샌프란시스코를 구경하는 사람들은 번씩 들려서 절벽 밑으로 시원하고 길게 펼쳐지는 오션 비치를 구경하는 클리프 하우스(Cliff House) 향해서 계속해서 달리다 보면, 어느새 기어리 블라바드가 포인트 로보스 애브뉴(Point Lobos Ave) 바뀌고, 옆의 주택가들은 48(48th Ave.) 마지막으로 보이지 않는다.  48가를 조금 지나면 바로 차길 왼쪽 편에 바다 바위 여관(Sea Rock Inn) 보인다.  그리고 여관 앞의 사거리에서 좌회전해서 엘카미노 델마 (El Camino del Ma St.) 따라 블락 길이 정도의 길을 올라가면 커다란 주차장이 눈에 들어온다.  주차장의 이름은 유에스에스 샌프란시스코 메모리얼 주차장(the USS San Francisco Memorial Parking lot)이다.  주차장 끝에는 쿼터를 집어넣고 금문교를 구경할 있는 망원경이 서너 설치되어있다.  곳이 땅끝 전망대(Land’s End Vista Point)이다.  그리고 망원경들 쪽으로 느긋하게 벤치들이 놓여있고, 왼편으로 고개를 돌리면 골든 게이트 땅머리(Golden Gate Headlands) 눈에 들어온다. 

              전망 좋은 주차장에 차를 세우면, 수트로 하이츠 공원(Sutro Heights Park), 수트로 배스 유적지(Sutro Bath Ruins), 클리프 하우스(Cliff House), 그리고 골든 케이트 공원의 땅끝(Land’s End) 산책할 있다.  모두가 연방 금문교 국립 휴양지(the federal Golden Gate National Recreational Area ) 일부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대중 교통을 이용하시는 좋아하시는 분들은 뮤니 버스 38번을 타고 포인트 로보스 애브뉴와 기어리 엘카미노 델마 교차로 근처의 정차장에서 내리면 된다. 

              수트로 배스 유적지에 있는 동굴에 들어가 파도가 치는 소리는 몸으로 느끼는 것은 신비스런 경험이다.  그보다 자주 찾아가는 길은 수트로 하이츠 공원 입구부터 동쪽으로 절벽을 따라 산책로이다.  산책로는 리젼 오브 어너(Legion of Honor) 북쪽으로 타고 돌아 1마일 정도 가량 계속된다.  길은 리젼 오브 어너에서부터 포장되어서 내려오는 엘카미노 델마 길과 만나며 끝난다.

              그리 길지 않은 산책로는 여러 가지 경치들을 가지고 있다.  경치들은 인상적이어서 사람에게도 쉽게 잊혀지지 않을 법하다.  여러 가지 핑계와 이유로 길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걸어본 적은 없다.  식구들하고 걸어본 적도 번을 넘지 않는다. 그래도 경치에 흥이 나서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다행스럽게 기회가 되어 다음 주면 샌프란시스코를 떠나갈 친구와 길을 같이 걸을 있었다. 


1/26/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