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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11.12 짬뽕공과 태극기 3
  2. 2007.09.17 구운몽(九雲夢)
  3. 2007.09.03 세계에서 제일 비싼 그림? 4

짬뽕공과 태극기

그림들/sf 중앙일보 2007. 11. 12. 16:51 posted by 긴정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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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

삼십 서울에는 원짜리 짬뽕 공이 있었다; 어른 주먹 반만한 크기의 회색 고무공.  공에는 바람이 어지간하게 차있어서, 벽에 던지면 !’ 소리를 내면서 튕겨져 나왔다.  찰진 고무로 만들어진 고무공의 공기가 어디론가 빠져나가는 신기한 일이었다.  공기가 빠진 공을 보면, 우리는 바람 빠졌다하며 주사기를 찾아 다녔다.  주사기가 손에 들리면 공의 배꼽을 찾았다. 배꼽은 군데 안쪽에 콩알만한 고무 덩어리였다.  바람 배꼽을 통해서만 들어가야 했다.  배꼽이 아닌 곳에 주사기를 꽂으면 공은 끝장이 났다.  배꼽이 아닌 곳에 조그만 주사 바늘 구멍 때문에 공이 다시 탱탱해지지 않아서였다.

              초등학교 쉬는 시간 운동장에서, 하교 한옥집들 사이로 골목길에서, 동네 시민 아파트 사이의 공터에서 공을 주무르고, 던지고, 받는 아이들 만나기는 어렵지 않았다.  짬뽕 공이 필요할 때면 공을 가지고 있는 친구를 기억했다가, 친구 대문 앞에 갔다.  그리고 누구야~ 놀자하고 목청껏 부르면 끝이었다.  지금도 누구야~ 놀자하고 부르는 리듬과 박자는 머리 속에 생생하다.  짬뽕 공만 있으면, ‘짬뽕’, ‘왔다리 갔다리’, 그리고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상대를 공으로 맞추어 술래를 만드는 놀이를 해가 때까지 있었다.

              그런데 놀이 도중 흔하게 벌어지는 사고가 있었다.  공이 남의 지붕에 올라가 버리는 것이었다.  주인이 호랑이라고 불리는 까다로우신 어른이면 애당초 포기하고 가지고 있는 친구를 잡았다.  주인이 호랑이가 아니면 공을 꺼내려는 시도를 했다. 몸이 가벼운 친구가 창문을 보호하는 창살을 잡고 처마 바로 위까지 고개를 비스듬히 올린다.  아슬아슬한 자세에서 자세를 가다듬고 없이 손을 공이 놓여있을 법한 곳의 처마를 더듬었다.  그리고 이때 중요한 것이 집주인이 눈치를 채지 않도록 조용히 작업을 해야 하는 것이었다.  운이 좋으면 공을 꺼내 내려오고 운이 없으면 집주인에게 걸려서 혼쭐이 났다.  그때는 의기양양해서 우리가 실력도 운도 좋아서 집주인 몰래 공을 되찾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되돌아보니 집주인이 맘이 좋아서 애들 하는 일을 웃어 넘겼던 것이 틀림없다.

              그렇게 며칠이고 놀다가 운이 좋은 하루는 엄마 손을 잡고 극장에 갔다.  보고 싶은 영화라며 조르고 졸라서 겨우 겨우 극장에 가게 것이었다.  상영 시간을 준수해서 영화가 시작되기 극장에 들어갔다.  왜냐하면 조금 늦게 극장에 들어가게 되면 불이 꺼져있어서 자리 찾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불이 켜져 있을 자리를 찾아 앉으면, 스크린 위에 동네 여기저기 식당이며, 상가의 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그러다 어느새 불이 꺼지고 광고가 사라지면 가슴이 두근거렸다.   영화가 애국가와 대한뉴스 뒤에 시작된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애국가가 울려 퍼지기 시작하면 관객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커다란 태극기가 풍선에 매달려 바람에 날리는 모습, 무궁화가 가득한 스크린.  애국가가 나오는 동안 손을 가슴에 얹고 있었던 사람들도 있었다. 애국가가 끝나 자리에 앉으면 익숙한 억양의 대한뉴스가 세상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지를 알려주었다. 

              당시 태극기는 굉장히 중요한 물건이었다.  따로 보관함이 있었고 태극기가 지저분해지면 빨지 않고 태웠다.  태극기를 게양하는 국경일이면 아침 일찍 일어나 아버지와 함께 깃봉에 태극기를 매달고, 대문에 걸어 놓았다.  그리고 골목길을 돌아보면 집집마다 태극기들이 게양되어 있었다.  그런 모습에, 우리 모두가 바른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뿌듯했다. 


구운몽(九雲夢)

그림들/sf 중앙일보 2007. 9. 17. 14:28 posted by 긴정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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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운몽도, 120x37 cm x 8. 조선시대, 경기대학교 소장



샌프란시스코 시청 건너편에 있는 아시안 아트 뮤지엄(http://www.asianart.org) 이층은 상설 전시장으로 한국, 중국, 일본의 고전 미술을 느낄 있는 곳이다.  한국 섹션은 중국과 일본 섹션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지만, 흥미가 더한 이유는 잊혀지는 한국의 문화와 정서를 담고 있어서이다.  반가운 그림들이며 도자기들 재미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이 소설 구운몽 그린 그림들이 배접되어 있는 병풍이다. 

 

효심이 지극했던, 조선 후기의 문신이며 소설가였던 김만중(1637~1692) 유배지 선천에서 어머니 해평 윤씨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소설 구운몽.  당시 김만중 조선 사람은 조선말로 글을 써야 한다 주장을 펼쳤고, 통속 소설의 문학적 가치와 쓰임을 높게 평가했다.  여러 편의 통속 소설을 썼던 것으로 추정되지만 안타깝게도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것은 구운몽 남정기 편뿐이다. 

 

1980년대 중반 고등학교 국어책에 실려진 구운몽 사춘기 고등 학생들에게 여러 가지 이유로 매혹적이었던 소설이다; 꿈과 현실을 넘나드는 이야기 구조, 여덟 명의 미인들과 인연을 맺는 주인공 성진의 애정 행각은 남녀 공학을 상상하지도 못하던 혈기 왕성한 그들의 입맛을 자극했다.  물론 모든 인연들이 헛된 것이라는 불교적 교훈이 따끔하게 마무리에 놓여져 있다.  

 

중국 고전 소설 서유기’처럼 재미있게 읽었던 구운몽 주인공 성진이 이끌어 간다.  육관 대사의 제자인 성진은 대사의 명으로 용왕에게 찾아가다, 선녀를 만나게 되고, 그들의 유혹에 빠져, 유가의 입신양명을 꿈꾸다가, 육관대사에 의해 선녀와 함께 지옥으로 추방된다.  그들은 윤회한다.  성진은 양소유로 태어나고 선녀들도 다른 이름들로 태어나, 다시 양소유를 만나게 된다.  이런 저런 드라마틱하고 로맨틱한 사건들을 통해 양소유는 이처 육첩(팔선녀) 함께 행복하고 영웅적인 인생을 누린다.  그러던 어느 역대 영웅들의 황폐한 무덤을 보고 양소유는 인생의 허무와 무상함을 느낀다.  유가의 입신양명을 손에 그는 이제 불교로 회의 하고자 한다.  그러던 참에 그는 서역의 중과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중과의 문답이 진행되는 가운데, 양소유라는 이름과 인물은 속으로 사라지고, 성진은 꿈에서 깨어나 육관대사 앞에 서있는 자신을 만나게 된다.  성진은 이전의 죄를 뉘우치고 육관대사의 후계자가 되어 불도를 닦고 선녀와 함께 극락에 간다. 

 

아시안 아트 뮤지엄의 구운몽병풍은 한국에서 그려졌지만, 일본으로 수집되어 갔다.  일본에서 그림들은 재배접되었고, 와중에 그림의 순서가 뒤섞였다.  그래서 병풍의 그림 순서는 글의 순서를 따르지 않는다.  병풍은 이제 샌프란시스코의 아시안 아트 뮤지엄에서 상시 전시되고 있다.  글만큼 파란만장한 사연을 지니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우연인지 필연인지 병풍 옆의 초상화는 임진왜란 많은 무공을 세운 사명 대사의 스승으로 서산 대사의 것이다.  일부러 시간 내서 가족들과 함께 병풍을 보며 그림의 순서를 추측해보는 ,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한국 사람들만의 재미다.  

2007/09/16

세계에서 제일 비싼 그림?

그림들/sf 중앙일보 2007. 9. 3. 16:38 posted by 긴정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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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ckson Pollock painting in his studio on Long Island, New York, 1950. © Hans Namuth



세상에서 제일 비싼 그림은 누가 언제 그렸고, 얼마일까?  

 

갤러리와 뮤지엄을 돌아다니며 느껴본 분위기에서 빠질 없는 부분; 일상 생활에서는 찾아보기 쉽지 않은 사람들의 고상한 표정과 우아한 몸짓이다.  아등바등하며 살아가는 삶의 구석에 그런 표정과 몸짓을 만들 있는 곳이 있다는 가식적이거나 이율배반적이라고 생각이 든다면 살짝 예민한 일까?  바쁜 생활 속에서 이유 없이, 조금 느슨해지고 넉넉해지는 요가를 시작해서거나, 배불리 밥을 먹은 따뜻한 곳에 늘어붙어있을 때에만 생기는 태도일 필요는 없다. 

 

그러고 보니 그런 태도의 사람들을 무더기로 만나본 기억도 있다.  한국에 가서 참가해 본적이 있는 대학 동문 신년하례식이 그랬다.  교수라는 직업이 이유로 그랬던 같다고 생각되는 , 사람들도 개인적으로 만나면 이렇고 저런 생활인들이다.  그런 보면 군중심리는 강력하다. 

 

이야기가 멀어지기 전에, 다시 갤러리로 돌아가자.  그곳에 유별난 태도의 사람들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고 느껴지는 평등의 순간이 있다.   순간은 가격표에서 번져 나온다.  가격표는 눈을 맞추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마술처럼 가면을 벗긴다, 마치 마지막 술자리가 끝난 교수들 테이블 위에 놓여진 계산서처럼.  

 

1948 잭슨 폴락(Jackson Pollock, 1912-1956) 그린 No 5(8 x 4 feet, oil on fiberboard) 2007 8 기준으로 세상에서 제일 비싼 그림이다.  그림은 2006 11월에 일억 사천만 달러에 거래되었다. 그려진 50 남짓 지난 지금, 공업용 페인트를 사용한 덕에 색이 바래고 있는 그림.  1958 뉴욕 모마(MoMA) 새로운 미국 그림 (The New American Painting Exhibition)으로 유럽 8 도시에, 폴락을 주축으로 추상 표현주의 그림들을 전시했을 , 많은 유럽의 비평가들의 가혹한 혹평(‘ 추상표현주의 화가들은 그들이 화가라고 생각하는가?’, ‘이건 예술이 아니다 나쁜 농담이다; 거대한 거미 줄에서 나를 구해달라) 시달렸던 그림.  그것이 세상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 da Vinci, circa 1503-1507) 모나리자(Mona Lisa, 30x21 inches, oil on poplar panel)보다 비쌀까?  1962 프랑스의 르브르 뮤지엄이 모나리자를 미국으로 전시 여행 보냈을 보험금이 일억 달러(2006 금액으로 육억 칠천만 달러)였으니, 대답은 쉽게 아니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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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onaldo da Vinci, Mona Lisa, 30x21 inches, oil on poplar panel, about 16th Century.


 

그림의 재료 값만 따져보면 달러도 되지 않는다.  그런데 무슨 이유로 그것들의 가격이 하늘을 뚫고 치솟을까?  답은 유리를 자르는 왜에 쓸모가 없는, 여성들의 가장 친한 친구라는 다이아몬드가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물보다 터무니 없이 비싼 이유에서 찾아진다.  희소가치.  구체적으로 이야기 한다면 문화적 희소가치이다.  

 

미술사를 공부하지 않은 사람들이, 애들이 그린 그림이랑 별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는, 혹은 맘만 먹으면 너도 나도 그릴 있다고 생각하는, 폴락의 그림이 지니고 있는 문화적 가치는 미국 미술사에서 빠질 없이 필수적이다; 2 대전 , 냉전의 새벽 속에서, 세계 미술의 중심지를 피카소(Picasso) 브라크(Braque) 대변되는 파리에서 뉴욕으로 옮긴 사람들이 추상 표현주의 작가들- 마크 로스코(Mark Rothko), 윌렘 드쿠닝(Willem de Kooning), 놀만 루이스(Norman Lewis)- 이고, 폴락이 중심에 서있다.  그러니 추상 표현주의는 현대 미술사의 커다란 획으로 기록되고, 그들의 그림들이 많은 사람들을 매혹한다.  그렇게 도취된 사람들 사이에서 치열한 자본 게임이 벌어지고, 자본이 몰리는 만큼 그림에 대한 보호도 철저해졌고, 저작권에 대한 보호도 투철해졌다.  이제 문화와 자본은 이혼이 불가능하다.  이쯤 되니 갤러리나 뮤지엄에 즐비한 비싼 문화를 맛보는 사람들의 고상하고 우아한 태도가 공연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