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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종교와 디지털 영상

그림들/sf 중앙일보 2009.04.06 14:05 posted by 긴정한

노상균, 숭배자들을 위해서, 머리: 84.5x69x46.5 Cm, 손 1: 75x44x51 Cm, 손2: 77x40x46 Cm, Sequins on polyester resin and fiberglass, 2008. 사진 노상균. 사진과 작품의 저작권은 작가에게 있음.



323일 저녁 7 30분부터 830분 까지, 러시안 아방가르트, 소련 포스트모던 미술과 문학의 전문가로 국제적 명성을 얻고 있는 보리스 그로이스(Boris Groys)의 강연이 열리고 있는 샌프란시스코 아트 인스티튜트(San Francisco Art Institute, 800 Chestnut Street) 의 강의홀에 앉아 있었다.  그로이스는 철학자, 수필가, 미술 평론가, 그리고 미디어 이론가란다.  그의 글은 프랑스 후기구조주의와 러시아 철학의 근본적 차이를 합친단다.  휴우~.  그 밖에도 여러 가지 다른 커다란 직함들이 그의 이름 앞 혹은 뒤를 따른다. 

        강의의 주제는 현대 종교와 디지털 영상이었다.  그로이스가 처음 말문을 여는 순간부터 끝날 때까지 두 가지가 생각되었다.  하나는 그의 액센트: 유럽에 사는 러시아 사람의 액센트.  덕분에 심오한 강의가 더욱 더 난해해졌다.  하지만 그것이 기분 나쁘지 않았던 이유는, 개인적인 경험 때문이다.  나 또한 대학에서 진한 한국 액센트를 사용하며 강의를 하고 있으니까.  진부한 이야기지만, 중요한 것은 액센트가 아니라, 어떤 내용 즉 가치를 담고 있는 이야기를 하는 가 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학계와 현실의 차이.  학자로서 그로이스가 바라보는 세상은 그가 공부한 이론들을 통해 굴절되어 비춰지는 이미지이다.  점 더 새로운 이론이 아니어서 조금은 실망스러우면서도, 그와 다른 한편으로 실망보다 더 크게 반갑고 편안하게도, 그로이스는 발터 벤야민(Balter Benjamin) 1930년 중반에 쓴 글 -기계복제 시대에 예술작품(The Work of Art in the Age of Mechanical Reproduction)-과 마샬 맥루한(Marshall Macluhan)의 미디어 이론을 기반으로 주제를 펼쳐나갔다. 

이 때쯤에서 들었던 생각은 그로이스가 가 사용하는 벤야민과 맥루한의 이론에 그로이스만큼 익숙한 사람들이 강의실에 몇 명이나 있었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글을 읽는 사람들 중에는 몇 명이나 있을까?  극소수라고 답해도 틀리지 않을 듯싶다.  그렇다면 그로이스 혹은 강연 주최측에서는 그의 강연 중, 혹은 강연 전에 미리 청중들에게 벤야민과 맥루한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았어야 할 법하다. 

똑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독자께 청한다.  위에 언급한 발터 벤야민의 에세이과 마샬 맥루한의 책 미디움은 메세지다(medium is message)’를 시간 나실 때 한 번 읽어보시길.  독서 경험이 현대 미술과 문화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보장한다.  책을 보기 전에 마샬 맥루한이라는 사람이 얼마나 창조적이고 이색적인지를 맛보고 싶다면, 유튜브에서 그의 이름을 검색해서 직접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도 한 재미다.

        이쯤에서 간단하게 그로이스의 강의를 요약하면, ‘비디오를 통해 전파되는 현대 종교는, 복제의 복제를 거듭하며, 때로는 의도적으로 때로는 우발적으로, 권위를 확장시킨다였다.  따라서 그 과정과 현상의 관찰을 통해서, 개인이 할 수 있는 행위는 다음과 같다: 한 개인이 어떤 식으로 기존에 이루어지던 반복을 거부하고, 새로운 가치-그것이 무엇이든-를 스스로 결정해서 그 가치를 실행하는 행동을 반복하면 권위를 갖출 수 있게 된다, 마치 현대 종교가 그렇듯이.  강의와 연결된 전시는 뒤따르는 홈페이지에서 보여진다: http://www02.zkm.de/mediumreligion/   전시는 그로이스

요약을 하고 나니 연상되는 문장은 카르마를 강연하던 지금은 이름을 까먹은 한 인도인의 문장이다: 혼자 꾸는 꿈은 단지 꿈이지만, 모두가 꾸는 꿈은 현실이다(A dream that you dream is just a dream but a dream that everyone dreams is a real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