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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캐롤

그림들/sf 중앙일보 2007.02.26 10:03 posted by 긴정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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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ssetti, Dante Gabriel

A Christmas Carol
1857-58
Watercolor and gouache on panel
13 1/8 x 11 1/4 in
Fogg Art Museum, Cambridge, Massachusetts

 

 

1862 2 11 런던의 저녁은 탁탁한 안개가 가득 담긴 어둠이 도시를 덮고 있고, 그녀의 안에는 아편 정기가 병목까지 담긴 뚱뚱한 녹색 유리병이 날카롭게 반짝거린다.   번째 임신의 결과가 차갑게 딱딱한 딸로 이어지지만 않았어도 이럴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결혼하기 결정적인 순간마다 혼인을 뒤로 미루던 지금의 남편을 뒤로 하기만 했어도 이럴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정도 양의 아편 정기면 짓궂은 현실의 손에서 벗어나기에 충분할 거야.’ 

서른 엘리자베스 시달(Elizabeth Siddal) 자위가 촉촉해진다.  생각지도 않은 너무 빨리 다가온 번째 임신이 이런 결정을 도운 것인지도 모른다.  

남편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1869 영국 첼시의 지붕 밑에서 가득한 위스키를 들이키며 사십대 중년의 단테 가브리엘 로제티(Rossetti, Dante Gabriel) 탁자 위에 책들을 응시한다.  낡은 스케치북들과 시집들.  귀가 닳은 스케치 권을 집어 연다. 여기 저기에 엘리자베스 시달의 모습이 보인다.  그녀의 구리 머리카락, 도톰한 복숭아 입술, 우아하게 목선.  스케치북 여기저기에 그녀는 그녀의 미모를 추앙하던 많은 화가들로 둘러 쌓여 있다.  

나도 명이었지.’ 

그의 씁쓸한 미소 위로 잔이 기운다.   화가들 사이를 아름다운 금발과 섬세한 외모로 횡보하던 자신의 모습이 떠오른다.  시와 그림, 아름다운 여인들로 물들여졌던 시간들.  이제는 과거다.  어느새 그의 상반신은 육중하게 불룩해졌고, 옅어진 금발들은 그의 머리를 가리지 못한다.  술과 약이 없이는 하루를 보내기 힘들다.

그의 하루를 채우는 슬픔과 공포는 탁자 위의 시집들에서 스며난다. 

저것들만 없었어도, 저것들만 테이블 위에 놓여지지 않았어도, 이렇지는 않았을 꺼야.’ 

시집들은 모두 로제티가 것들이다.  그것들은 엘리자베스를, 젊음을,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노래들은 모두 엘리자베스와 함께 묻혀져 있었어야 했다.  친구 화웰의 감언이설에 넘어가서 시집들을 엘리자베스의 무덤에서 꺼낸 일은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다.  엘리자베스가 관속에서 아직도 미모를 지키고 있었고, 그녀의 구리 머리카락이 자라나 관을 가득 채우고 있다는 화웰의 이야기는 듣지 말았어야 했다.  그것들을 출판했던 일은 더할 나위 없이 어리석은 일이었다.  시집을 폄하했던 평론가들과 세상 사람들의 비난은 괴로운 일이지만 견디지 못할 것은 아니었다.  

그런 것들은 사실 것도 아니야.’  

그를 사로잡아 경직시키는 그것은 속에 누워 있는 엘리자베스의 모습에 대한 상상이었다.  그의 상상을 가득 채우며, 자라나는 그녀의 진한 구리 머리카락과 그녀의 얼굴.  이 상상은 현실보다 강렬하다.  지우려고 애써보아도 더욱 선명해지며 커지는 이미지를 로제티는 참을 수가 없었다. 

왈칵 입안으로 위스키를 털어놓고, 잔을 탁자에 내려놓으며 술병으로 눈을 돌린다.  술병 너머로 예전에 그린 그림이 하나 보인다.  크리스마스 캐롤.  엘리자베스와 결혼 , 그녀가 임신하기 일년 전에 그렸던 그림이다.  그림 위로 애를 가진 기쁨에 어린아이처럼 흥분을 감추지 못했던 그녀의 모습이 겹쳐진다.

2006년 12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