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설명
혜원 신윤복(1758~?)
주막도
샌프란시스코에서 서울로 날아가는 시간은 12시간 정도가 걸린다. 서울에서 샌프란시스코로 돌아오며 소요되는 비행 시간은 10시간 남짓이다. 기류를 역행해서 가는 것과 순행해서 가는 것 때문에 2시간의 차이가 생긴다.
광화문에서 며칠 전에 만났던 선배에겐 이 구절들 중에 두 단어가 맘에 차지 않았다.
“어째서 서울로 날아가고 샌프란시스코로 돌아오냐? 서울로 돌아오는 것이고, 서울에서 미국 도시로 향하는 것이 날아가는 것이지.”
가족들의 모습을 필두로 한국은 많이 바뀌어 있었다. 하나 둘 더 늘어난 주름살로 따뜻하고 정겹게 웃어주시는 부모님들.
부쩍 큰 키며 달라진 얼굴들로 나타난 조카들.
조카들 기르느라 뭉뚝해진 형제 자매들의 몸매며 손 모습이 사진 속의 모습과는 또 다르다.
30년 넘게 한 곳에 자리하고 계시는 부모님들 거처의 풍경은 아파트들로 확 바뀌어져 있다.
청계천부터 시작해서 모습이 많이 예쁘장하게 바뀐 서울. 전 서울 시장의 손길 때문이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서울은 모습만 바뀐 것이 아니었다.
말도 바뀌었다. 가족들과 앉아 시청했던 뉴스에서 남자 앵커가 자연스럽게 “중국에서 한국 기업들의 짝퉁 전화기들이 생산되고 있습니다.”한다. 모 병원에 잠깐 들렀을 때는 탈의실이 갱의실로 바뀐 것에 슬쩍 아연해했다.
날씨도 한 몫 했다.
삼한사온이라는 전형적이었던 차가운 겨울의 모습은, 해가 비치는 며칠과 해 없는 재색 빛 하늘의 며칠로 나뉘어져 따뜻했다.
잠깐씩 들렸던 부산과 대구의 공기에 비해 서울의 공기는 많이 탁해져 있었다. 하지만 북경에서 살고 있다는 화가 부부에 따르면 서울의 공기는 좋은 편이란다. 북경의 공기를 호흡하다가 서울에 오면 감사할 따름이란다.
외국계 보험회사들의 간판이 길거리 여기저기에 많이 붙어있고, 간판이 가득 찬 인사동 거리는 예술의 거리로 보여지지 않았다. 오히려 명동과 흡사한 모습이었다. 인산인해는 인사동뿐이 아니었다.
종로, 명동, 강남역, 강남 고속버스터미널, 서울역, 부산역, 대구역은 한국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는 지를 증명해 보이고 있었다. 한 두 걸음 옮길 때마다 다른 사람들과 부닥치지 않도록 조심했다. 압구정동은 어지간하게 옷을 차려 입지 않고 가면 눈초리를 받는 다는 친구의 이야기에 볼만 하겠다 싶었지만 시간이 안되 못 가보았다.
저잣거리에 늘어선 선술집들의 소주도 변했다. 알코올 도수 이십 오도는 호랑이 담배 피울 때 이야기고 이십 도도 옛날 이야기다. 이젠 이십 도를 넘지 않는 소주가 주류란다. 그래선지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 인지, 소주 한 병마시던 친구가 이젠 두 병을 마셔야 한단다. 그런 그들과 이틀 만나고 술 마시고 하루는 술병이 나서 골골거리며 쉬고 또 나가서 술 잔을 기울이며 시간을 보냈다.
미국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멀어졌던 술. 포도주 두 잔이나, 맥주 두 병, 또는 소주 반 병이면 주량이 꽉 차서 서울에서 어떻게 친구들과 어울리나 했던 것은 피식 웃음이 나는 기우였다. 동네 친구들을 만나면 동네 친구들과의 기억과 습관이 되살아났고, 학교 친구들을 만나면 학교 친구들과의 기억과 습관이 되살아났다. 사회 친구들도 그랬다. 머리로는 잊혀져 있던 것들이 몸에 남아있었다.
참 신기한 일이었다. 이렇게 행동하는 모습을 처음 대면하는 처가 참 신기한 사람이란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는 술 한잔도 잘 못하는 처가 신기하다.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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