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장욱진


간간히 짬을 내서 세네 달에 한 번씩은 돌아가며 들러야 하는 아시안 아트 뮤지엄(Asian Art Museum, http://www.asianart.org), 리젼 오브 어너(Legion of Honor, http://www.thinker.org/legion), 드 영 뮤지엄(de Young Museum, http://www.thinker.org/deyoung), 샌프란시스코 모마(SF MOMA, http://www.sfmoma.org), 버클리 아트 뮤지엄(BAM, http://www.bampfa.berkeley.edu).  한 달에 한 번씩은 보고 지나가야 하는 기어리 스트리트(Geary St)와 서터 스트리트(Sutter St)의 고만 고만한 수십 개의 갤러리들.  책방에서 머리를 식히며 늘어질 때 잡아 끌어 눈요기로 넘기는 대여섯 권의 잡지들.  위에 나열한 공간들과 잡지들을 누비고 다니는 시간만으로도 빠듯하게 한 달 한 달이 넘어가니 화가로 산다는 것도 느긋하지만은 않다.

              술과 그 얼굴에 새긴 싱그러운 웃음 같은 그림으로 나날을 보내며 80년대를 주름잡던 장욱진 화백(http://www.changucchin-museum.com/)의 시간은 까마득히 먼 과거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영감이 떠오르지 않아 작업을 할 수 없다던 아직도 한국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친구의 중얼거림은 이제 기억 저 너머에 가득히 먼지가 싸여진 이야기이다.  그 친구는 이제 작업 후 포도주를 마시며 배를 쓰다듬는다.  샌프란시스코에서 그와 비슷한 이야기라면, 히피들이 바글거리던 60년대 베이 지역(Bay area)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이 구석 저 구석에서 희멀건 마리화나를 피우며 작업을 꾸려나가는 작가들의 냄새가 나긴 한다. 

              샌프란시스코의 60년대를 최고의 시간으로 기억하는 몇 몇 사람들과의 만남은 여지 없이 대다수 그들의 지난날 영광스럽고 사이키델릭한 히피적 언행으로 무늬 놓여진다.  베트남 전쟁 반대의 깃발 아래서, 자정의 샌프란시스코 언덕 위에 앉아 시를 읊으며 밤거리를 푸른 젊음으로 물들이던 시절들.  지미 헨드릭스, 도어스, 제니스 조플린의 노래를 타고 옮겨지던 발걸음들.  하지만 그것들이 샌프란시스코 언덕 저 편에 자리잡고 있는 차이나타운의 밤으로 스며들지는 못했다.  같은 시간 냉전에 뿌리를 둔 통행금지 시간이 차이나타운을 딱딱하고 답답하게 움켜지고 있었다.  이 때 즈음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영화가 한 편이 바비(Bobby)다.      

              영화는 다재다능한 에밀리오 에스테베즈(Emilio Estevez)가 글과 감독, 연기까지 하며 만들었다.  줄거리는1968년 6월 6일 앰버사더 호텔에 있었던 22명의 사람들의 이야기로 짜인다.  바비는 로버트 케네디(Robert F. Kenedy)이고 영화내내 등장하는 바비의 다큐멘터리 장면들은 부시의 이라크 전 관련 성명들과 쌍이 된다.  라티노들이 등장하는 장면들은 불법이민자들과의 불협화음이 울려퍼지는 지금 의미 있는 상징이다.  안타깝게도 60년대의 샌프란시스코가 그랬던 것처럼 영화에 아시안이 등장하는 장면은 기억에 딱 하나다.  전쟁의 괴로움으로 울고 있는 베트남 여인.

             극과 극이 통한다는 말처럼 여인의 얼굴이 버지니아 텍 비극의 한 아시안의 얼굴을 떠올린다.  답답하게 지나간 한 주는 버지니아 텍 사건보다 한국 정부와 언론들의 행보 때문이었다.  국제 정서가 딱하게 어두운 사람들이 번듯하게 사회의 노른 자리에서 떵떵거리는 모습들.  그렇게 지난 한 주 위로 엘 에이 4.29 폭동 15주년이 겹쳐진다.  퍼브릭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포럼은 흑인 앵커가 진행을 하고 당시 최초였던 흑인 엘에이 경찰청장의 이야기가 펴져 나온다.  

              생각해보니 긴 이주 동안 뮤지엄이며 갤러리며 어느 한 곳에도 나들이를 하지 못했다.  다시 짬을 내서 바람을 쐴 때가 온 것 같다. 

 

2007년 4월 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