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립 미술관에서

 

테오 반 고흐(좌측)와 빈센트 반 고흐(우측)

그림에 관심이 있든 없든, 남녀 노소를 불문하고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이 한 두 번 들어본 이름의 화가라면 이중섭, 박수근, 빈센트 반 고흐 정도로 짐작한다.  아마도 그 이유는 그들이 삶을 살아가던 기간 동안 대부분 불운하고 힘든 하루 하루를 보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그리고 끈질기게 예술혼을 불태웠으며, 그들이 세상에서 사라진 후, 비로서 후세의 사람들이 그들의 동시대인들이 보지 못했던 천재성을 발견하고 이해하며 그들의 그림들과 사랑에 빠져든다라는 이야기로 간추려질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전설이 된 그들의 유명세가 그들 작품의 가격을 하늘 높은 줄도 모르고 치솟게 했고.

              19세기말과 20세기 초 중반을 살던 그들의 삶과 예술은 한국 전쟁 이후 세대들의 화가에 대한 선입견으로 자리잡는다.  그래서 그 세대들의 자녀들 중 그림을 천직으로 삼으려는 사람들은 “환치면 배고프다.”라는 이야기를 너 나 할 것 없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그런 말씀을 하신 어르신들 중 어느 분도 올해 꽃다운 나이 43세에 그림을 그려 큰 부자가 된 영국인 데미안 헐스트(1965년 6월 7일생) 같은 화가를 상상하지 못했다. 

              지난했던 삼 김(金) 시대를 지나, 지금은 486세대가 된 386세대(30대의 80년대 학번들인 60년대 생 세대)의 정부가 막을 내리고 있는 서울.  고적한 분위기의 덕수궁 돌담 길 옆에 자리잡고 있는 서울 시립 미술관 본관에서 빈센트 반 고흐 전을 봤다.  전시는 작년 11월 24일에 시작되어 올 3월 16일까지 열린다.

              특이하게 빈센트 반 고흐(1853년 3월 30일–1890년 7월 29일)와 테오 반 고흐(1857년 5월 1일– 1891년 1월 25일)의 사진을 비롯해서 반 고흐 가문 사람들의 옛날 사진들로 시작되는 전시는 유화 45점과 드로잉 22점을 볼 수 있는 기회다. 

              그곳에서 달라진 서울의 진풍경도 맛볼 수 있었다.  찬 바람을 헤치며 도착한 일요일 오후의 서울 시립 미술관 안팎은 사람들로 넘쳐났다.  미술관 밖에 자리잡은 매표소에는 구불구불하게 겹쳐진 사람들의 줄이 붙어 있었다.  추위를 이기며 기다린 30분과 12000원 덕분에 손에 잡은 표를 들고 들어간 미술관 본관은 바깥보다 따뜻했다.  마찬가지였던 건 입장을 기다리는 굵고 길고 빽빽한 사람들의 줄.  단언하는 데 한국에서 이렇게 많은 관람객들 사이에 끼여서 그림 구경을 해 본적이 없었다.  작년과 재 작년 한국에서 경매를 통해 그림을 구입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더불어 대중들의 그림에 대한 인식과 관심이 달라졌다는 이야기를 접해봤다.  그리고 빈센트 반 고흐 덕분에 그 현실을 확인한 셈이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온 사람들은 휴대 전화로 사진을 찍고, 잡담을 하며 줄을 따라 갔다.  이 줄은 전시장 안에서도 계속 이어졌다.  그림과 그림 사이를 번갈아 가며 비교해 보고, 연도를 확인하고, 비슷한 주제를 찾아서 볼 생각을 할 수도 없었다.  새끼 줄에 낀 굴비처럼, 앞사람과 뒷사람 사이에서 행여 한 두 번씩 서로의 발을 밟아가며 전시를 즐겼다.  원하지도 의도하지도 안았지만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귀에 들어왔다.  이야기들은 나와 내 화가 친구들이 하는 이야기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빈센트 반 고흐가 잘 생겼다는 이야기.  테오 반 고흐도 잘생겼다는 이야기.  저 그림은 색이 이쁘다는 이야기.  저 그림이 얼마나 비쌀까 하는 호기심, 등등. 

              특이한 관람 경험이었다. 그림만 즐긴 게 아니라 그림을 구경하는 관객들까지 즐겨보았으니까 말이다.  이제 궁금해지는 것은 함께 그림을 즐겼던 관객들이 그들의 자녀들에게 해줄 말이었다.  “환치면 배고프다.”라는 말이 계속 살아남을까?  

2008년 1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