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irl with a Pearl Earring, Johannes Vermeer, 46.5 × 40 cm (18.31 × 15.75 in), c. 1665
책들이 베스트 셀러 대열에 들어서거나, 오랜 시간에 걸쳐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클래식으로 인정받는 경우 영화화되는 경우가 빈번해 진다. 만화책도 포함된다. 그런 형상이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이유들 중에 하나는 원작의 유명세가 영화를, 원작 없이 만들어지는 영화보다, 상대적으로 쉽고 안전하게 흥행에 성공시키기 때문이다. 얼핏 떠오르는 예들: 성경,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해밍웨이의 소설들, 톨킨(J. R. R. Tolkien)의 책들, 해리 포터 시리즈, 슈퍼맨, 배트맨 등.
그런 영화들을 본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의견들 중의 하나는 ‘원작(책)보다 재미있는 영화는 드물다’라는 것이다. 왜 그럴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가 ‘영화가 책을 읽으며 상상했던 것과 많이 달라서’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알게 모르게 많은 상상을 하고, 상상하는 것을 즐기고, 자신의 상상에 많은 가치를 부여하며 살아가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상상력은 책과 함께만 날개를 펴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림을 볼 때도 그런다. 그래서 그림과 화가를 주제로 하는 영화들이 일년에 한 두 편씩은 제작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영화들은 책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영화들과 크게 다른 점이 있다. 책을 바탕으로 한 영화들은 많은 경우 줄거리가 정해지고, 그 위에 자유롭게 이미지가 덧붙여지지만, 그림을 바탕으로 한 영화들은 자유롭게 줄거리가 지어내지고, 그림을 바탕으로 한 이미지가 덧붙여진다.
그림과 화가를 주제로 만들어진 영화 중에 괜찮은 영화 세편이 있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Girl with a Pearl Earring, 2003)’, ‘클림트(Klimt, 2006)’, ‘미술 학교 비밀(Art School Confidential, 2006)’. 엄밀하게 이야기하자면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뮤지엄(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에 걸려있는 버미어(Johannes Vermeer, 1632-1675)의 그림을 바탕으로 한 트래이시 셰바리얼(Tracy Chevalier)의 책이 원작인 영화이다. 스카렛 죠한슨(Scarlett Johansson)이 소녀로, 콜린 훨스(Colin Firth)가 17세기 독일 거장 버미어로 등장한다. ‘북쪽의 모나리자(Mona Lisa of the North)로 알려진 그림의 제작 과정을 둘러쌓고 일어나는 사건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는 그림에서 연장된 듯한 농밀한 조명과 구도가 상영 시간 100분을 맛깔지게 한다.
존 말코비치(John Malkovich)가 클림트(Gustav Klimt, 1862-1918)로 분장한 영화 ‘클림트’는 20세기 초 비에나와 파리를 무대로 한다. 칠레에서 태어나 프랑스로 망명한 감독 피노(Raúl Ruiz Pino)은 클림트의 삶과 그림에 영감을 얻어 영화를 만들었다. 그리고 영화는 사실보다 감독의 상상에 뿌리를 둔다. 헐리우드 영화들과는 전혀 다르다. 많은 클림트의 그림들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그의 많은 그림들이 여성 누드를 주제로 삼았듯, 영화의 여러 장면들에 누드가 등장한다.
‘미술 학교 비밀’은 두 부류의 사람들에게 성큼 다가온다. 첫 번째 부류는 미술대학을 나온 사람들. 영화를 보는 동안 대학을 다니던 시절의 기억이 영화와 겹쳐져서 영화와 자신을 동시에 발견한다. 두 번째 부류는 미술대학을 가려다가 발길을 돌린 사람들. ‘한 번 예술가면 영원한 예술가’라는 명제로 예견해보건 데 한 번 예술가의 길을 생각해본 사람들은 영원히 예술가의 길을 생각하는 한 구석이 가슴 어디엔가 남아 있을 듯하다. 그들에게 영화는 미술대학 안을 예술에 대해 고민하며 거니는 모습을 은밀하게 상상할 수 있는 좋은 배경을 건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