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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4.06 현대 종교와 디지털 영상
  2. 2009.03.23 중견화가 원미랑 그룹전 2
  3. 2009.03.16 얀 페이밍: 예스! (YAN PEI-MING:YES!)

현대 종교와 디지털 영상

그림들/sf 중앙일보 2009. 4. 6. 14:05 posted by 긴정한

노상균, 숭배자들을 위해서, 머리: 84.5x69x46.5 Cm, 손 1: 75x44x51 Cm, 손2: 77x40x46 Cm, Sequins on polyester resin and fiberglass, 2008. 사진 노상균. 사진과 작품의 저작권은 작가에게 있음.



323일 저녁 7 30분부터 830분 까지, 러시안 아방가르트, 소련 포스트모던 미술과 문학의 전문가로 국제적 명성을 얻고 있는 보리스 그로이스(Boris Groys)의 강연이 열리고 있는 샌프란시스코 아트 인스티튜트(San Francisco Art Institute, 800 Chestnut Street) 의 강의홀에 앉아 있었다.  그로이스는 철학자, 수필가, 미술 평론가, 그리고 미디어 이론가란다.  그의 글은 프랑스 후기구조주의와 러시아 철학의 근본적 차이를 합친단다.  휴우~.  그 밖에도 여러 가지 다른 커다란 직함들이 그의 이름 앞 혹은 뒤를 따른다. 

        강의의 주제는 현대 종교와 디지털 영상이었다.  그로이스가 처음 말문을 여는 순간부터 끝날 때까지 두 가지가 생각되었다.  하나는 그의 액센트: 유럽에 사는 러시아 사람의 액센트.  덕분에 심오한 강의가 더욱 더 난해해졌다.  하지만 그것이 기분 나쁘지 않았던 이유는, 개인적인 경험 때문이다.  나 또한 대학에서 진한 한국 액센트를 사용하며 강의를 하고 있으니까.  진부한 이야기지만, 중요한 것은 액센트가 아니라, 어떤 내용 즉 가치를 담고 있는 이야기를 하는 가 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학계와 현실의 차이.  학자로서 그로이스가 바라보는 세상은 그가 공부한 이론들을 통해 굴절되어 비춰지는 이미지이다.  점 더 새로운 이론이 아니어서 조금은 실망스러우면서도, 그와 다른 한편으로 실망보다 더 크게 반갑고 편안하게도, 그로이스는 발터 벤야민(Balter Benjamin) 1930년 중반에 쓴 글 -기계복제 시대에 예술작품(The Work of Art in the Age of Mechanical Reproduction)-과 마샬 맥루한(Marshall Macluhan)의 미디어 이론을 기반으로 주제를 펼쳐나갔다. 

이 때쯤에서 들었던 생각은 그로이스가 가 사용하는 벤야민과 맥루한의 이론에 그로이스만큼 익숙한 사람들이 강의실에 몇 명이나 있었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글을 읽는 사람들 중에는 몇 명이나 있을까?  극소수라고 답해도 틀리지 않을 듯싶다.  그렇다면 그로이스 혹은 강연 주최측에서는 그의 강연 중, 혹은 강연 전에 미리 청중들에게 벤야민과 맥루한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았어야 할 법하다. 

똑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독자께 청한다.  위에 언급한 발터 벤야민의 에세이과 마샬 맥루한의 책 미디움은 메세지다(medium is message)’를 시간 나실 때 한 번 읽어보시길.  독서 경험이 현대 미술과 문화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보장한다.  책을 보기 전에 마샬 맥루한이라는 사람이 얼마나 창조적이고 이색적인지를 맛보고 싶다면, 유튜브에서 그의 이름을 검색해서 직접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도 한 재미다.

        이쯤에서 간단하게 그로이스의 강의를 요약하면, ‘비디오를 통해 전파되는 현대 종교는, 복제의 복제를 거듭하며, 때로는 의도적으로 때로는 우발적으로, 권위를 확장시킨다였다.  따라서 그 과정과 현상의 관찰을 통해서, 개인이 할 수 있는 행위는 다음과 같다: 한 개인이 어떤 식으로 기존에 이루어지던 반복을 거부하고, 새로운 가치-그것이 무엇이든-를 스스로 결정해서 그 가치를 실행하는 행동을 반복하면 권위를 갖출 수 있게 된다, 마치 현대 종교가 그렇듯이.  강의와 연결된 전시는 뒤따르는 홈페이지에서 보여진다: http://www02.zkm.de/mediumreligion/   전시는 그로이스

요약을 하고 나니 연상되는 문장은 카르마를 강연하던 지금은 이름을 까먹은 한 인도인의 문장이다: 혼자 꾸는 꿈은 단지 꿈이지만, 모두가 꾸는 꿈은 현실이다(A dream that you dream is just a dream but a dream that everyone dreams is a reality).

중견화가 원미랑 그룹전

그림들/sf 중앙일보 2009. 3. 23. 14:55 posted by 긴정한

사진 설명: “다양한 인상들: 베이 지역 추상(Diverse Impression:Bay Area Abstracttion)”이 열리는 트라이턴 아트 뮤지엄(Triton Museum of Art)내부. 왼쪽부터 , '떠다니는 꿈(Floating Dream)', ‘떠다니는 은(Floating-sliver)’, ‘이른봄(Early Spring)’. 사진 김정한. 그림 저작권은 화가 원미랑에게 있음.


트라이턴 아트 뮤지엄(Triton Museum of Art, 1505 Warburton Ave. Santa Clara)에서는 5 17일까지 “다양한 인상들: 베이 지역 추상(Diverse Impression:Bay Area Abstracttion)”이라는 이름으로 일곱 명의 화가들의 그룹전이 열리고 있다.  그들 중 한 명이 한국인 중견화가 원미랑이다.  전시장에 걸린 화가의 작품 세 점, '떠다니는 꿈(Floating Dream)',떠다니는 은(Floating-sliver), 이른봄(Early Spring)’, 앞에 놓인 벤치에 앉아서 화가와 한 시간을 보냈다.  

          세 점의 작품들은 모두 제한된 색상을 배경으로 한다.  예를 들자면 열 개의 패널들로 만들어진 작품 떠다니는 꿈(floating Dream)’ 에는 묵은 한지에서 볼 수 있을듯한 나이든 연한 노란색과 침착하게 가라앉은 회색, 깊이를 알 수 없지만 단호한 검은 색들이 배경을 차지하고 있다.  제한된 배경색들 위로 수 백 수 천 개의 셀 수 없이 많은 선들이 그어져 있다.  당연하다는 듯 선들의 색 또한 깊은 생각과 태도로 걸러진 제한된 색상들이다.  그 색들은 선들이 그어지고, 겹쳐지며 깊이를 획득하고 형태(())를 이뤄간다.  색상들에서는 적은 것이 많은 것(Less is more)라는 미니멀리즘의 미학이 연상되지만 선들이 가지고 있는 많은 움직임들과 에너지에서 표현주의적인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떠다니는 은(Floating Sliver) 은 세 점의 작품들 중 중간에 놓여져 있다.  작품은 두 개의 패널로 이루어져 있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이 가장 마음에 다가와서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봤다.  좌측 패널의 확신에 찬 은색이 가로지르는 공간 하나.   상대적으로 멀리 놓여진 원들(좌측 패널)과 눈 앞으로 확 다가온 원의 표면(우측 패널)이 빚어내는 두 번째 공간.  다가온 원의 표면에 앉아 있는 작고 밀도 높은 강렬한 검은 조각들(너무 무거워서 원의 표면을 찌그러뜨릴 것 같은 이 조각들은 원을 만드는 선들이 얼마나 강하게 표면을 받치고 있는 지를 보여준다)이 만들어내는 울렁거림.  열거된 세 가지 요소들이 엉키며 펼쳐내는 큰 공간은 오랫동안 그림을 바라보게 만들었다.  

'이른 봄(Early Spring)'은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셀 수 없이 많은 선들로 이루어진 작품이지만 차분하고 조용히 가라앉아 있다.  그리고 아주 작은 공간이 열리며(이때 제목이 머리 속에서 겹쳐진다), 앞서 보았던 두 작품에서 찾아볼 수 없는 선명하고 진한 색채가 번져 나온다.  그 색채들의 이질감과 갑작스러움이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무엇인가를 기대하게 한다.  혹은 위에 언급된 세 작품들과 병렬져 있는 화가의 꽃 씨리즈에 담겨지는 공간으로 열려진 문일 수도 있겠다. (화가의 꽃 시리즈는 지금 샌프란시스코 대학(University of San Francisco) 로스쿨 안의 로턴다 갤러리(Rotunda Gallery)에 걸려져 있다.)

며칠 동안 한 화가의 작품들을 쫓아다니며 바라보고, 그 화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일련의 과정들은 흡사 한 소설가의 작품들을 모두 읽어내려 가는 것과 비슷하다.  공통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평이한 일상의 경험들이 개별적인 예술가(화가 혹은 소설가)에게 특정한 이미지를 남기는 과정.  그 과정에서 보여지는 일상과 예술가의 관계를 읽어내는 것은 흥미롭다.  그 관계는 다시 예술 작품(그림 혹은 책)을 보는 당신이 일상생활과 빚어내는 관계와 병렬적으로 놓여지고, 세상이 얼마나 흥미진진한 것인 지를 깨닫게 한다.  늘 그렇듯 새삼스럽게 말이다.


3/22/09

얀 메이멩:예스!가 열리고 있는 월터 앤드 맥빈 갤러리스(Walter and McBean Galleries). 사진 김정한. 그림 저작권은 화가 얀 페이밍에게 있음.



샌프란시스코 아트 인스티튜트(San Francisco Art Institute, 800 Chestnut, SF 415. 749.4563)안에는 개의 갤러리가 있다; 디에고 리베라 갤러리와 월터 앤드 맥빈 갤러리스(갤러리는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열린다).  디에고 리베라의 벽화가 그려져 있는 디에고 리베라 갤러리에서는 주로 샌프란시스코 아트 인스티튜트 학생들의 작품이 전시된다.  월터 앤드 맥빈 갤러리스에서는 5 23일까지 페이밍: 예스! (YAN PEI-MING:YES!) 전시된다.

          얀의 전시는 처음 접했다.  전시 도록을 따르면 그는 1960년에 중국 상하이에서 태어나, 1980년에 프랑스로 이주한 프랑스 화단에 스타로 떠올랐단다.  세계 미술계의 주목을 받은 그림들은 정치인과 문화인들을 커다랗게 그린 초상화들이다.  예를 들자면, 모택동, 교황 2, 이소룡, 무명의 창녀들, 자화상, 얀의 아버지, . 

          1970년대를 중국에서 지냈으니 문화혁명의 영향을 받았겠고, 인터넷에서 얼핏 본 교황의 그림은 프란시스 베이컨의 영향을 강하게 보여준다.  이소룡의 그림은 아직 찾아보지 않았지만, 제목만으로 앤디 와홀의 엘비스 프레슬리를 연상시킨다.  1980년에 시작된 프랑스 파리(Paris)에서의 생활은 곧 정리되고 1982년부터 프랑스의 다른 도시 디젼(Dijon)에서 지금까지 살고 있다. 

갤러리로 돌아가자.  월터 앤드 맥빈 갤러리스에 걸려진 그림들은 커다란 군인들의 초상화(98.5x75 inches) 3점으로 시작된다.  그 오른쪽 옆으로 지금은 대통령인 오바마의 초상화(그림은 2008년에 만들어졌다)가 뒤를 따른다.  오바마의 뒤를 이어 전시장 이층에 나열된 그림들은 미국의 초석을 다진 대통령과 미국 역사에 굵직한 선을 그은 대통령들의 초상화들이다.  작고한 대통령들의 영향력은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남아서 아침 점심 저녁으로 우리는 그들의 얼굴을 담고 있는 화폐들을 주고 받는다.  

초상화들 중 살아있는 사람의 얼굴은 오바마가 유일하다.  3명의 군사들은 각자 다른 개인적인 표정을 보여주지만, 그 표정들 뒤로는 커다랗고 공통적으로 읽혀지는 이라크 전과 죽음이 강하게 묘사되어 있다.  쉽게 두 가지가 공감되는 이유는 8년 동안이라는 긴 시간 동안 부시 정권에 시달린 사람들이 미국인들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적어도 미국 서부의 한 도시와 프랑스 동부의 한 도시가 밀접하게 연결이 되어있다.  덕분에 중국태생 프랑스인과 한국태생 미국 영주권자가 죽음에 대한 한 단면을 공유한다.

짐작으로 끝날 수 도 있었던 이라크 전과 죽음에 대한 연상은, 전시장 일층과 이층 사이에 자리잡고 있는 작은 방에 걸려져 있는 병사들의 관들을 그린 그림으로 구체적으로 현실화된다.  슬그머니 안도의 숨소리가 잴 수 없었던 상상의 어두운 범위를 벗어난다.  현실은 시간이 지나면 잊을 수도 있고, 이리 저리로 도피할 수도 있고, 혹은 맞닥뜨릴 수도 있다.  안도는 관들이 그려진 그림과 맞서있는 아기들의 그림들을 바라보면서 방향을 튼다.  마음에 남는 것은 생과 사에 대한 또 21세기 초의 조명.  도대체 이 이중구조는 몇 천년을 지나고도 살아남아있으니 그것을 다시 대할 때마다 스물 스물 피어오르는 피곤함은 지루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 영구적이다. 

그 이중구조가 동전의 한 면을 차지하고 있다면, 다른 한 면은 왕들과 군사들, 삶과 죽음의 간극을 메우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셀 수 없이 많고 다양한 초상들이다.  평범하게 살기(YES!)가 어려운 21세기 초를 살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에 대한 상상이 현실과 버무려져, 담겨 자라나는 전시장은 월터 앤드 맥빈 갤러리스의 투명한 유리벽 밖에 펼쳐져 있다.


3/1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