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운몽(九雲夢)

그림들/sf 중앙일보 2007. 9. 17. 14:28 posted by 긴정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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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운몽도, 120x37 cm x 8. 조선시대, 경기대학교 소장



샌프란시스코 시청 건너편에 있는 아시안 아트 뮤지엄(http://www.asianart.org) 이층은 상설 전시장으로 한국, 중국, 일본의 고전 미술을 느낄 있는 곳이다.  한국 섹션은 중국과 일본 섹션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지만, 흥미가 더한 이유는 잊혀지는 한국의 문화와 정서를 담고 있어서이다.  반가운 그림들이며 도자기들 재미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이 소설 구운몽 그린 그림들이 배접되어 있는 병풍이다. 

 

효심이 지극했던, 조선 후기의 문신이며 소설가였던 김만중(1637~1692) 유배지 선천에서 어머니 해평 윤씨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소설 구운몽.  당시 김만중 조선 사람은 조선말로 글을 써야 한다 주장을 펼쳤고, 통속 소설의 문학적 가치와 쓰임을 높게 평가했다.  여러 편의 통속 소설을 썼던 것으로 추정되지만 안타깝게도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것은 구운몽 남정기 편뿐이다. 

 

1980년대 중반 고등학교 국어책에 실려진 구운몽 사춘기 고등 학생들에게 여러 가지 이유로 매혹적이었던 소설이다; 꿈과 현실을 넘나드는 이야기 구조, 여덟 명의 미인들과 인연을 맺는 주인공 성진의 애정 행각은 남녀 공학을 상상하지도 못하던 혈기 왕성한 그들의 입맛을 자극했다.  물론 모든 인연들이 헛된 것이라는 불교적 교훈이 따끔하게 마무리에 놓여져 있다.  

 

중국 고전 소설 서유기’처럼 재미있게 읽었던 구운몽 주인공 성진이 이끌어 간다.  육관 대사의 제자인 성진은 대사의 명으로 용왕에게 찾아가다, 선녀를 만나게 되고, 그들의 유혹에 빠져, 유가의 입신양명을 꿈꾸다가, 육관대사에 의해 선녀와 함께 지옥으로 추방된다.  그들은 윤회한다.  성진은 양소유로 태어나고 선녀들도 다른 이름들로 태어나, 다시 양소유를 만나게 된다.  이런 저런 드라마틱하고 로맨틱한 사건들을 통해 양소유는 이처 육첩(팔선녀) 함께 행복하고 영웅적인 인생을 누린다.  그러던 어느 역대 영웅들의 황폐한 무덤을 보고 양소유는 인생의 허무와 무상함을 느낀다.  유가의 입신양명을 손에 그는 이제 불교로 회의 하고자 한다.  그러던 참에 그는 서역의 중과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중과의 문답이 진행되는 가운데, 양소유라는 이름과 인물은 속으로 사라지고, 성진은 꿈에서 깨어나 육관대사 앞에 서있는 자신을 만나게 된다.  성진은 이전의 죄를 뉘우치고 육관대사의 후계자가 되어 불도를 닦고 선녀와 함께 극락에 간다. 

 

아시안 아트 뮤지엄의 구운몽병풍은 한국에서 그려졌지만, 일본으로 수집되어 갔다.  일본에서 그림들은 재배접되었고, 와중에 그림의 순서가 뒤섞였다.  그래서 병풍의 그림 순서는 글의 순서를 따르지 않는다.  병풍은 이제 샌프란시스코의 아시안 아트 뮤지엄에서 상시 전시되고 있다.  글만큼 파란만장한 사연을 지니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우연인지 필연인지 병풍 옆의 초상화는 임진왜란 많은 무공을 세운 사명 대사의 스승으로 서산 대사의 것이다.  일부러 시간 내서 가족들과 함께 병풍을 보며 그림의 순서를 추측해보는 ,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한국 사람들만의 재미다.  

2007/0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