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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의 얼굴

그림들/sf 중앙일보 2007.01.29 06:58 posted by 긴정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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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

 

 

 

말썽쟁이 아들의 장래를 바라보시며, 70년대 , 배제, 경기, 경복 고등학교가 근처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서대문으로 이사를 단행하셨던 어머니. 안타깝게도 경기, 배제 고등학교는 아들이 고등학교 진학하기 전에 강남으로 이사를 가버렸다.  설상가상 아들은 험하기로 유명한 중동 중학교로 추첨 입학했다. 동문간의 의리가 돈독한 이유가 학교를 힘들게 다녀서 그런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해병대가 영원한 해병대처럼. 학교는 아들을 졸업시키고, 다음 해에 농담처럼 강남으로 이사를 했다.

 

아들이 친구들과 떡볶이며 순대를 사먹으며 희희낙낙 거리며 돌아다니던, 영천 시장 독립문은 일제 식민지 시절의 투사들의 상징물이었다. 시대는 변했고, 차량 통행이 독립 정신의 상징보다 중요해졌다. 금화터널을 만들기 위해 독립문이 무악고개 쪽으로 이전됐다. 이전되는 것도 서러웠을 텐데, 장기 이식하듯 문의 안쪽 보이는 곳의 돌들이 빼돌려 졌다. 이전 다리 밑에서 위쪽을 바라보다, 문에 걸맞지 앉는 새빨간 벽돌들을 발견하고 얼마나 기가 막혔던지. 지금도 누가 범인인지 궁금하다.

 

독립문과 사직터널 사이에 자리잡은 운동장 좁은 대신고등학교로 추첨되었을 기분이 그랬던 것은 경복고등학교에서 고등학교입시를 봐서였다. 이래저래 기분이 그러셨을 부모님들에게 고교 이과 2학년 여름방학에 아들은 미술대학에 가겠다는 폭탄선언을 했다. 육이오 동란을 몸소 겪은 부모님들에게 그림쟁이 혹은 환쟁이는 굶기 좋은 직업이었다. 얼마나 속이 상하셨을까? 자식이기는 부모가 드문 탓에 아들은 미대로 진학하고 시대는 변했다. 물론 틀린 말이 없다라는 명제는 아직도 유효하다. 다행스럽게 당시 부모님들 생각과 약간 다르게, 아들은 매끼를 꼬박꼬박 챙기며 미국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미국과 한국의 그림 시장과 시스템은 차이가 있다. 한국의 화가들은 아직도 학연과 지연에 많은 영향을 받는 하다. 그들은 전시를 하기 위해 갤러리를 돈을 주고 임대한다. 전시 벽에 붙은 그림 밑에는 가격이 보이지 않는다.

 

미국의 화가들은 돈을 주고 전시하지 않는다. 학연과 지연이 중요하지만 필수 요건은 아니다. 그림을 보고 갤러리에서 같이 일을 것인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림을 좋아하는 갤러리와 일을 하면 전시를 기회를 얻을 있다. 임대료는 없다. 홍보의 대부분도 갤러리가 책임진다. 그도 그럴 것이 그림을 팔면 가격의 반을 갤러리가 가져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머지 반은 화가에게 돌아온다. 그래서 그림 가격을 책정하는 것도 화가의 중요한 결정 중의 하나이다. 당연히 그림의 가격이 전시되는 그림 밑이나, 전시 그림 목록에 낀다. 그래서 그림을 사는 사람들이 관람과 동시에 투자를 생각한다. 나가는 작가의 그림들은 가격이 은행 금리보다 높게 오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세속을 벗어나 인간 정신의 본연을 꿰뚫는 그림이란 어디 있지 하는 회의가 일어나기 충분하다. 회의의 답은 간단하다. 화가도 인간이니 먹어야 산다.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렘브란트 같은 거장들도 그림으로 밥을 벌었다. 화가들이 이름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이런 저런 이유로 예나 지금이나 낯설지 않다. 이름난 렘브란트의 그림들 300 만에 발견된 28 자화상은 2003년에 1 1백만 불에 거래되었다.

 

4월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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