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7/8리젼 오브 어너(Legion of Honor) 다녀 왔다렘브란트에서 티바우드까지; 종이 위의 작품들 십년의 콜렉팅(Rembrandt to Thiebaud: A Decade of Collecting Works on Paper) 전시가 벌어지고 있다;2007 6 23 부터 10 7일까지.
                 
주최 측이 자랑스럽게 내놓는 전시 작가 명단은 작품의 성격에 따라 크게 부류로 나누어져 있다드로잉;미켈란젤로(Michelangelo Buonarroti), 안토니오 워터루(Anthonie Waterloo), 지아코모 발라(Giacomo Balla),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 한스 알프(Hans Arp), 앤디 와홀(Andy Warhol), 웨인 티바우드(Wayne Thiebaud).  판화;프레데리코 바로씨(Federico Barocci), 조지 스텁스(George Stubbs), 콘스탄블(John Constable), 고갱(Paul Gauguin), 조르지오 모란디(Giorgio Morandi),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게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  사진; 찰튼 와킨스(Carleton Watkins), 루이스 캐롤(Lewis Carroll), 이모겐 커닝햄(Imogen Cunningham), 다이앤 알버스(Diane Arbus).  담백한 흑백 그림과 판화들, 사진들 속에 하나, 간간히 보이는 컬러 작품들은 파스텔, 수채화, 사진들이다.  

                  
작가들의 이름에서 짐작되듯 전시는 15세기부터 21세기, 그리고 유럽, 일본, 미국의 작품들을 망라한다.   다른 말로 하면 고전(classic), 인상주의(impressionism), 표현주의(expressionism), 모던 아트(modern art), 컨템플러리(contemporary) 더불어 초기 사진부터 현대 사진들, 그리고 19세기 일본의 나무 판화들이 빼곡하다. 

                 
미켈란젤로의 작품은 그가 원하는 대리석의 크기를 간략하게 그려놓은 작은 종이다.  작은 종이가 사람 크기 보다 크게 깎여지는 그의 조각들의 시작이다.  렘브란트의 바다 조개는 당시 사람들의 취미의 단면을 보여준다.  그가 파산했을 그의 스튜디오에서 많은 바다 조개들이 쏟아져 나왔다. 다빈치가 잉크로 그린 여자의 얼굴도 조그마한 종이에 담긴다. 

                  
손쉽게 닳고 찢어지는 종이의 수명은 상상 밖으로 길다.  앞에 거론된 스타들과 동시대를 살아간 작가들의 판화들의 상태는 싱싱하다.  그들의 이름들은 생소하지만 작품의 질은 스타들에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다.  이로 미루어 보면 유명세는 대대적으로 행운과 연결되는 분명하다.  그러니 유명하지 않다고 스타들보다 뒤쳐지는 것을 아쉬워할 일은 별로(?) 없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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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 유럽 화가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일본의 우키요에(ukiyoe)들도 구석에서 시선을 끈다;Utagawa Kunisada(1786-1864, A Mother Nursing Her Child under Mosquito Net, from The series Edo Jiman(The Pride of Edo)), Utagawa Kuniyosh(1797-1861, Onoe Kikugoro II as the Cat-Witch of Okaba, Ichimura Uzaemou XII as Inaba No Suke, and Mimasu Gennosuke as Shrasuka Juemon, from the play Go jusan Tsugi, 1835 Color wood c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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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odblock print portrait of Utagawa Kunisada, at the age of 80 years, dated January 1865. This memorial portrait was designed by his principal student, Kunisada II, and is one of the few known images of Kunisada, being from the pre-photographic era in Japan. *



윤복, 홍도 대표되는 한국의 풍속화들이 함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잠깐 든다.  한일전 축구, 배구, 야구를 보면서 흥분하며 자라온 영향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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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원 신윤복(1758-?(영조34-?)), 기다림, 한지에 담채 *



사물(대다수의 경우 사람) 모습을 대부분 실내에서 기록하고 연구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지는 고전 미술을 지나치면, 작가들의 눈이 실외로 향해지기 시작한다.  날씨, 풍경, 여러 가지 직업의 사람들 이곳 저곳의 원주민들 그림에 담기는 주제들이 다양해진다; 사창가에서 인생을 보낸 프랑스 화가 툴루즈 로트렉(Toulouse-Lautrec) 자신의 그림을 가리키는 누드의 여성과 함께 서있는 사진의 익살, 새하얀 꽃들이 담긴 화병은 낭만을 넘어 병적인 아름다움을 과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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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 유럽을 지난 하니 당대의 미국인 윈슬로 호머(Winslow Homer) 바다가 격동한다.  호머처럼 일러스트레이터(illustrator) 되려던 에드워드 하퍼(Edward Hopper) 그림이 20세기 미국의 도시 풍경을 애잔하고 담담하게 적막하다.  건너편 방벽에 가난, 배고픔, 전쟁을 진하게 담아내는 독일인 케테 콜비츠(Käthe Schmidt Kollwitz) 드로잉과 판화가 압도적으로 공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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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äthe Kollwitz. (German, 1867-1945). Selbstbildnis mit der Hand an der Stirn (Self-portrait with Hand on Forehead). (1910). Etching and drypoint, plate 6 1/16 x 5 1/2" (15.4 x 14 cm) © 2007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 VG Bild-Kunst, Bonn *



프랑스인 이브스 클라인(Yves Klein) 공간으로 자신을 던지는 공간의 화가(Sing Day Newspaper, November 27th 1960, incorporating photography captioned The Painter of Space Hurls Himself into The Void) 여기서 드디어 대면한다.  그가 제작한 가판대에 꽂은 부의 하루 신문에 게재된 그림은 오래 전부터 보고 싶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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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Saut dans le Vide (Leap into the Void 혹은 The Painter of Space Hurls Himself into The Void)



클라인에
앞서 뉴욕의 추상 표현주의(Abstract expressionism) 이끈 쿠닝 (Willem de Kooning) 그림들 점도 맛깔스럽다.  1950년대 주류이던 동부의 추상 표현주의에서 벗어나, 베이 지역 인체운동(Bay area figure movement) 주도한 화가들인 디벤콘(Richard Diebenkorn), (David Park) 그림들도 반갑다.  그들을 이어 베이 지역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베히틀(Robert Bechtle) 티바우드(Wayne Tiebaud) 그림 점씩도 괜찮다. 

                  
전시장을 나온 곰곰이 되씹어보니 아쉬운 점은 러시아와 소련 연방 작가들의 드로잉이 없었다는 점이다.  아마도 간혹 대해오던 그쪽의 몇몇 작가들 작품을 직접 보고 싶다는 갈증 때문인 하다.


 
*는 전시와 상관없는 그림이지만, 읽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까해서 올린 그림이다.

화가의 얼굴

그림들/sf 중앙일보 2007.01.29 06:58 posted by 긴정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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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

 

 

 

말썽쟁이 아들의 장래를 바라보시며, 70년대 , 배제, 경기, 경복 고등학교가 근처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서대문으로 이사를 단행하셨던 어머니. 안타깝게도 경기, 배제 고등학교는 아들이 고등학교 진학하기 전에 강남으로 이사를 가버렸다.  설상가상 아들은 험하기로 유명한 중동 중학교로 추첨 입학했다. 동문간의 의리가 돈독한 이유가 학교를 힘들게 다녀서 그런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해병대가 영원한 해병대처럼. 학교는 아들을 졸업시키고, 다음 해에 농담처럼 강남으로 이사를 했다.

 

아들이 친구들과 떡볶이며 순대를 사먹으며 희희낙낙 거리며 돌아다니던, 영천 시장 독립문은 일제 식민지 시절의 투사들의 상징물이었다. 시대는 변했고, 차량 통행이 독립 정신의 상징보다 중요해졌다. 금화터널을 만들기 위해 독립문이 무악고개 쪽으로 이전됐다. 이전되는 것도 서러웠을 텐데, 장기 이식하듯 문의 안쪽 보이는 곳의 돌들이 빼돌려 졌다. 이전 다리 밑에서 위쪽을 바라보다, 문에 걸맞지 앉는 새빨간 벽돌들을 발견하고 얼마나 기가 막혔던지. 지금도 누가 범인인지 궁금하다.

 

독립문과 사직터널 사이에 자리잡은 운동장 좁은 대신고등학교로 추첨되었을 기분이 그랬던 것은 경복고등학교에서 고등학교입시를 봐서였다. 이래저래 기분이 그러셨을 부모님들에게 고교 이과 2학년 여름방학에 아들은 미술대학에 가겠다는 폭탄선언을 했다. 육이오 동란을 몸소 겪은 부모님들에게 그림쟁이 혹은 환쟁이는 굶기 좋은 직업이었다. 얼마나 속이 상하셨을까? 자식이기는 부모가 드문 탓에 아들은 미대로 진학하고 시대는 변했다. 물론 틀린 말이 없다라는 명제는 아직도 유효하다. 다행스럽게 당시 부모님들 생각과 약간 다르게, 아들은 매끼를 꼬박꼬박 챙기며 미국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미국과 한국의 그림 시장과 시스템은 차이가 있다. 한국의 화가들은 아직도 학연과 지연에 많은 영향을 받는 하다. 그들은 전시를 하기 위해 갤러리를 돈을 주고 임대한다. 전시 벽에 붙은 그림 밑에는 가격이 보이지 않는다.

 

미국의 화가들은 돈을 주고 전시하지 않는다. 학연과 지연이 중요하지만 필수 요건은 아니다. 그림을 보고 갤러리에서 같이 일을 것인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림을 좋아하는 갤러리와 일을 하면 전시를 기회를 얻을 있다. 임대료는 없다. 홍보의 대부분도 갤러리가 책임진다. 그도 그럴 것이 그림을 팔면 가격의 반을 갤러리가 가져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머지 반은 화가에게 돌아온다. 그래서 그림 가격을 책정하는 것도 화가의 중요한 결정 중의 하나이다. 당연히 그림의 가격이 전시되는 그림 밑이나, 전시 그림 목록에 낀다. 그래서 그림을 사는 사람들이 관람과 동시에 투자를 생각한다. 나가는 작가의 그림들은 가격이 은행 금리보다 높게 오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세속을 벗어나 인간 정신의 본연을 꿰뚫는 그림이란 어디 있지 하는 회의가 일어나기 충분하다. 회의의 답은 간단하다. 화가도 인간이니 먹어야 산다.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렘브란트 같은 거장들도 그림으로 밥을 벌었다. 화가들이 이름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이런 저런 이유로 예나 지금이나 낯설지 않다. 이름난 렘브란트의 그림들 300 만에 발견된 28 자화상은 2003년에 1 1백만 불에 거래되었다.

 

4월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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