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1일은 두 번째 봄날이다. 3월 20일 춘분이 봄의 시작인 미국이니까. 양력 2월 4일경이 입춘으로 봄의 시작인 한국과는 한 달 반의 차이가 진다. 어렸을 적 기억에 아쉬운 겨울 방학이 끝나고 지루하던 학기의 시작을 견디면 찾아오는 단 일주일의 봄 방학은 짧아서였는지 세게 달았다. 공중 목욕탕에서 개구진 동네 친구들과 더운 물 찬물을 오락가락하며 놀다가 어른들에게 한 소리 듣던 시절.

등이 펴지는 의자 다섯 개가 쪼르르 놓여진, 이발소는 목욕탕 근처에 있다. 세네 명 이발사들은 의사처럼 하얀 가운을 두루고 머리에는 기름이 잘잘 흘러내린다. 모두 약속이나 한 듯 왼쪽 위 주머니에 까만 빗이 꽂혀 있고, 여자 종업원도 한 명 있었다. 그녀는 이발이 끝난 손님의 면도와 현란한 서커스 같은 손놀림의 얼굴 안마를 담당한다. 가끔은 면도만 하러 오는 이상하게 싱거운 어른들도 있다. 그녀는 아주 가끔 몇 몇 단골 손님의 손톱도 깎았다.

다섯 개 이발 의자들 중 안쪽 구석 자리에 놓여진 것 위에는 항상 김이 폴폴 나서 굉장히 뜨거워 보이는 하얀 수건을 얼굴에 덮고 잠을 자는 아저씨가 있다. 길다란 빨간 플라스틱 의자는 이발 의자들 반대쪽 벽에 붙어있다. 자리가 나길 기다리는 어린 나와 친구들이 쪼르르 앉아있다. 어른들 사이에 꼭 낀 지금, 빨간 의자 옆에 널부러진 ‘썬데이 서울’을 집는 다는 건 현명한 처사가 아니다. 그저 속으로 ‘빨리 어른이 돼서 저 신기하고 현란한 얼굴 안마 한 번 받아봐야지’ 한다. 이발이 끝난 아저씨가 계산을 끝내면 꼭 그녀가 요구르트를 한 병 주고 다양한 인사말을 구사한다. “십 년은 젊어 보이시네요.” “ 훤칠 하시네요.” “감사합니다.” 싱긋 웃고 돌아서는 그녀와 눈이 마주쳐 민망할 때면 빨간 의자 뒤 벽에 걸려진 그림으로 눈을 돌린다. 빗 바랜 ‘천지창조’.

바티칸 시(市) 안 공식적으로 교황이 생활하고 있는 시스틴 성당(Sistine Chapel). 수많은 거장들의 그림들로 둘러 쌓여진 이곳의 천장에는 미켈란젤로가 창조해낸 거대한 벽화가 있다. 한국에서 ‘천지창조’라 불려지는 벽화의 일부는 ‘아담의 탄생(The Creation of Adam)’이라는 제목으로 불린다. 1508년 교황 줄리우스 2세에게 위탁 받아 시작된 이 그림은 4년 동안 미켈란젤로의 목을 뒤로 젖힌다. 머리 위로 들려진 붓에서 흘러나오는 물감으로 얼마나 고생을 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켈란젤로는 사전에 부탁된12 명 사도의 그림을 300명이 넘는 인물들로 채운다.

수많은 촛불로 색이 바래진 이 천장화는 1981년부터 1994년까지 대대적으로 복원된다. 혹자는 복원이 원화를 망쳤다고 애통해하고, 대다수는 성공적인 갱생을 축하했다. 봄이면 생각나는 이 그림은 이제 다시 봄을 맞이한 셈이다. 그런데1990년대에 사라진 이발소 문화는 어디서 잠자고 있을까? 그 신비한 안마에 대한 미련이 아직도 남아있는데.

북가주 중앙일보, 2006년 3월 21일 (화요일), A-15


두드리면 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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