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하르트 리히터(Gehard Richter). 스트론티엄(Strontium), 2004


십. 앞 사람의 앉은 키, 머리 크기에 신경 쓰이지 않는다.
구. 언제든 화장실에 들락거릴 수 있다.
팔. 팝콘 냄새가 없다.
칠. 깜깜하지 않다. 물론 깜깜해서 극장에 가는 분들도 있겠지만.
육. 상영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다.
오. 녹색의 천국, 골든 게이트 공원 안에 있다.
사. 동행한 친구, 연인, 가족과 수시로 재잘거릴 수 있다.
삼. 광고가 없다.
이. 아기와 같이 갈 수 있다. 어린 아기가 울거나 소리 내도 눈 찌푸리는 사람들이 없으니 “아이 때문에 어디 갈 수가 없다” 하시는 분들에게는 이 만한 곳이 없다.
일?
70년대 초부터 삼십여 년을 서울시 서대문구에서 지내와서, 70년대 말부터 80년대 초의 명동이 기억에 남아있다. 초등학교 시절 날을 잡아 친구들과 서대문 로터리, 광화문, 시청을 걸어지나 도착한 명동. “코스모스 백화점이 최고야.” “미도파가 최고다.” “무슨 말이야. 화신 백화점이 있다.” 우겨대며 당시 드물던 키 큰 백화점 유리문을 밀고 지나, 에스컬레이터에 발을 올리던 기억. 에스컬레이터를 둘러싼 커다란 거울과 휘황찬란한 조명들. 버튼을 누르면 불이 들어오고, 자동으로 문이 열리고, 위 아래로 날아다니는 엘리베이터. 더군다나 신세계 백화점의 바깥을 볼 수 있게 유리로 된 엘리베이터는 커다란 충격이었다. 새로운 것을 ‘본다’라는 것에 빠져든 것이 그 때부터였을까? 지금은 샌프란시스코 다운 타운의 갤러리들과 뮤지엄들을 돌아다니며 눈요기를 한다.
골든 게이트 공원 안, 재패니즈 티 가든 근처에 차를 세우고, 구리로 둘러진 독특한 건축으로, 좋다 아니다 구설에 쌓였던 드 영 뮤지엄의 외관을 슬쩍 더듬어 보고 입구로 향한다. 지진으로 유명한 도시의 뮤지엄 입구 마당 타일과 그 위에 놓은 커다란 돌덩이들은 좌악 좌악 지진이 지나간 듯 갈라져 있다. 샌프란시스코에 대한 커다란 농담이다.
문을 지나 계획된 동선을 따르면, 알루미늄 위에 앉혀진 수많은 커다란 동그라미들이 눈으로 날아든다. 스트론티엄(Strontium). 신문에 난 사진을 전자 현미경으로 찍어낸 이 작품은 독일인 화가 게하르트 리히터(Gehard Richter)의 것이다. 4년 전 샌프란시스코 모마(뮤지움 오브 모던 아트)에서 회고전을 했던 그는 생존하는 화가들 중 독보적인 인물이다. 작가로서 가지는 자유와 권리에 대한 주장은 르네상스 마스터들의 테크닉, 추상, 미니멀리즘(특정한 사물과 기호를 사용하지 않고 작가를 표현하는 추상표현주의에 대한 반항으로, 느낌을 배제하는 요소적, 기하학적 모습이 담기는 그림 경향), 팝 컬쳐를 무리 없이 들락거리며 창조되는 수준 높은 작품들로 구현된다. 당연히 한 두 가지 주제로 평생을 통해 작품 생활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 미술 세계에서 그는 커다란 질문이다. 그 질문 위에 미디어를 피하는 그의 태도가 작품에 신비함을 더한다.
일! 게하르트 리히터(Gehard Richter)의 최신작 스트론티엄을 드 영 뮤지엄에 가면 무료로 볼 수 있다.

참고 웹사이트 de young

북가주 중앙일보, 2006년 3월 1일 (수요일), A-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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