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화가 원미랑 그룹전

그림들/sf 중앙일보 2009. 3. 23. 14:55 posted by 긴정한

사진 설명: “다양한 인상들: 베이 지역 추상(Diverse Impression:Bay Area Abstracttion)”이 열리는 트라이턴 아트 뮤지엄(Triton Museum of Art)내부. 왼쪽부터 , '떠다니는 꿈(Floating Dream)', ‘떠다니는 은(Floating-sliver)’, ‘이른봄(Early Spring)’. 사진 김정한. 그림 저작권은 화가 원미랑에게 있음.


트라이턴 아트 뮤지엄(Triton Museum of Art, 1505 Warburton Ave. Santa Clara)에서는 5 17일까지 “다양한 인상들: 베이 지역 추상(Diverse Impression:Bay Area Abstracttion)”이라는 이름으로 일곱 명의 화가들의 그룹전이 열리고 있다.  그들 중 한 명이 한국인 중견화가 원미랑이다.  전시장에 걸린 화가의 작품 세 점, '떠다니는 꿈(Floating Dream)',떠다니는 은(Floating-sliver), 이른봄(Early Spring)’, 앞에 놓인 벤치에 앉아서 화가와 한 시간을 보냈다.  

          세 점의 작품들은 모두 제한된 색상을 배경으로 한다.  예를 들자면 열 개의 패널들로 만들어진 작품 떠다니는 꿈(floating Dream)’ 에는 묵은 한지에서 볼 수 있을듯한 나이든 연한 노란색과 침착하게 가라앉은 회색, 깊이를 알 수 없지만 단호한 검은 색들이 배경을 차지하고 있다.  제한된 배경색들 위로 수 백 수 천 개의 셀 수 없이 많은 선들이 그어져 있다.  당연하다는 듯 선들의 색 또한 깊은 생각과 태도로 걸러진 제한된 색상들이다.  그 색들은 선들이 그어지고, 겹쳐지며 깊이를 획득하고 형태(())를 이뤄간다.  색상들에서는 적은 것이 많은 것(Less is more)라는 미니멀리즘의 미학이 연상되지만 선들이 가지고 있는 많은 움직임들과 에너지에서 표현주의적인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떠다니는 은(Floating Sliver) 은 세 점의 작품들 중 중간에 놓여져 있다.  작품은 두 개의 패널로 이루어져 있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이 가장 마음에 다가와서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봤다.  좌측 패널의 확신에 찬 은색이 가로지르는 공간 하나.   상대적으로 멀리 놓여진 원들(좌측 패널)과 눈 앞으로 확 다가온 원의 표면(우측 패널)이 빚어내는 두 번째 공간.  다가온 원의 표면에 앉아 있는 작고 밀도 높은 강렬한 검은 조각들(너무 무거워서 원의 표면을 찌그러뜨릴 것 같은 이 조각들은 원을 만드는 선들이 얼마나 강하게 표면을 받치고 있는 지를 보여준다)이 만들어내는 울렁거림.  열거된 세 가지 요소들이 엉키며 펼쳐내는 큰 공간은 오랫동안 그림을 바라보게 만들었다.  

'이른 봄(Early Spring)'은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셀 수 없이 많은 선들로 이루어진 작품이지만 차분하고 조용히 가라앉아 있다.  그리고 아주 작은 공간이 열리며(이때 제목이 머리 속에서 겹쳐진다), 앞서 보았던 두 작품에서 찾아볼 수 없는 선명하고 진한 색채가 번져 나온다.  그 색채들의 이질감과 갑작스러움이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무엇인가를 기대하게 한다.  혹은 위에 언급된 세 작품들과 병렬져 있는 화가의 꽃 씨리즈에 담겨지는 공간으로 열려진 문일 수도 있겠다. (화가의 꽃 시리즈는 지금 샌프란시스코 대학(University of San Francisco) 로스쿨 안의 로턴다 갤러리(Rotunda Gallery)에 걸려져 있다.)

며칠 동안 한 화가의 작품들을 쫓아다니며 바라보고, 그 화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일련의 과정들은 흡사 한 소설가의 작품들을 모두 읽어내려 가는 것과 비슷하다.  공통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평이한 일상의 경험들이 개별적인 예술가(화가 혹은 소설가)에게 특정한 이미지를 남기는 과정.  그 과정에서 보여지는 일상과 예술가의 관계를 읽어내는 것은 흥미롭다.  그 관계는 다시 예술 작품(그림 혹은 책)을 보는 당신이 일상생활과 빚어내는 관계와 병렬적으로 놓여지고, 세상이 얼마나 흥미진진한 것인 지를 깨닫게 한다.  늘 그렇듯 새삼스럽게 말이다.


3/2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