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그림

그림들/sf 중앙일보 2008. 9. 15. 14:55 posted by 긴정한

침대 위의 아이와 세 곰돌이들, 김예지



다가오는 10월에 살이 되는 예지는, 그림 그리는 엄마와 아빠의 모습을 보고 자라났다.  그래서라고 생각이 되는 , 아이는 자주 그림을 그린다.  아이가 그리는 것들은 여러 가지가 있다.  엄마, 아빠, 자기 자신은 그림을 처음 그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빠짐없이 공부하는 대상이고, 괴물, , 나무, , 할로윈 호박, 마녀, , 웅덩이, 기차, 곰돌이 혹은 곰순이 그때 그때 호기심과 관심이 많이 가는 주제들이 등장해왔고 사라져 갔다.  

              오랫동안 관심의 대상이 되는 주제들은 당연히 시간이 지나면서 그리는 횟수가 늘어났고, 쌓여지는 그림들에 비례해서 그것들에 대한 이해도 점점 깊어졌다.  예를 들자면 무렵 아이가 그렸던 엄마의 얼굴은, 여기저기가 찌그러진 동그라미라고 생각되는 무언가 하나, 그리고 그것 안에 흐트러져있는 점들 개였다: 개는 , 하나는 , 나머지 하나는 입이었다.  그렇게 간단하고 헝클어져 있던 모양들이 천천히 조금씩 진화해 왔다.  

              이년의 경력이 쌓인 요즘에는 제법 연필을 쥐는 모양도 그럴 해졌고, 연필 끝에서 늘어져 나오는 선들도 제법 강약 조절이 된다.  얼굴을 표현하는 동그라미라고 믿어지던 찌그러진 무언가는 이제 정말 동그라미가 되었다.  얼굴을 보면 성별도 쉽게 구분이 된다: 여자를 그릴 때는 속눈썹이 그려지고 눈동자도 남자보다 크다.  모양도 여러 가지로 얼굴에 나타나는 감정들을 보여준다: 행복한 사람들은 곡선의 입으로 웃고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무표정한 직선의 입을 가지고 있다.  눈들과 사이 어디에고 찍혀졌던 점에서 시작된 코는 이제 작은 동그라미로 바뀌어 얼굴의 중심에 자리잡는다.  그뿐만이 아니다.  귀걸이와 목걸이가 보태졌고 머리카락도 자라났다.  엄마와 아이의 얼굴 위에 머리카락은 길고 진하고, 아빠의 머리카락은 짧고 다섯 가닥뿐이다. 머리카락 위로 머리띠와 왕관이 번갈아 가며 자리를 잡는다.  바지와 치마의 구별도 생겼다.  아무것도 없는 막대기 하나로 상징되던 팔에, 전부터 손도 더해졌다.  물론 손가락들은 찾아볼 없는, 얼굴 분의 일만한 동그라미 손이다.   

              그림이 바뀌는 과정으로 미루어보건 아이의 사람에 대한 관심과 이해는 얼굴에서 비롯된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처음 아이가 그린 그림에는 얼굴이 몸통 역할도 했기 때문이다: 다리가 얼굴에서 뻗어 나왔었다.  그때는 발도 표시가 사람 얼굴의 거미 같았다.  그렇게 아주 간략하던 이해로 시작되었던 얼굴 그림( 하나와 ) 점차 복잡해 졌다(머리카락, 눈썹, 속눈썹, 모양).  그리고 살이 지나면서 몸통이 탄생했고 그곳에서 다리가 솟아나왔다.  이런 변화들은 아이가 점점 많은 것을 얼굴에서 보고 이해하게 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고, 사람이 얼굴뿐 아니라 몸통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니까 아이는 상대적으로 어렸을 때보다 사람을 많은 것을 보고 이해하게 것이다. 

              이런 현상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이런 현상을 확연하게 보여주는 그림들은 신기한 것이다.  더불어 아이는 스스로가 창조해낸 그림을 통해 자부심을 쌓아나간다.  아이는 벌써 여러 자기가 그린 그림을 어른들에게 선물했다.  그리고 선물을 받은 어른들은 아이를 칭찬할 기회를 얻고, 아이는 칭찬에 자랑스러워지고, 밝은 미소를 짓는다. 



9/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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