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미국 고등학생들

그림들/sf 중앙일보 2007. 8. 6. 15:13 posted by 긴정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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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1745~1806), 서당



여름 학기가 지나간다이번 여름에는 과목을 가르쳤는데 중에 하나는 고등 학생을 대상으로 인체 드로잉 수업이었다.  수업 이름으로 있듯 누드 모델을 촉매로 인체 드로잉을 공부하는 수업이다.  고등 학생을 여름에 가르치는 것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여러 모로 가르치는 것만큼 배운 것이 많다. 


             
처음 고등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진행했을 느끼는 것은 놀라움이었다.  그들은 신체적으로 지적으로 기대 이상으로 성숙하다.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나와서 이런 생각을 하는 걸까라고 생각도 해봤지만, 동료 강사들이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면 일반적으로 신세대들이 지니는 공통된 모습인 하다.  그들은 자신의 행동에 진지하고, 미래에 대해 확고한 방향을 가지고 있다.  부모님들이 원하는 방향을 따르거나 혹은 부모님들과 자신의 방향을 절충하며 자라온 세대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누드 모델을 대하는 자세도 초연하다.  대학 초년생 시절 누드 모델을 보며 긴장하던 세대를 자라온 사람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들의 담담함은 오히려 모델을 편하게 해주는 셈이다.  그리고 누드를 담는 예술이 고등 학생들에게 지나친 것이라고 생각하는 많은 부모님들은 이제 생각을 바꾸어야 때가 같다.  그들은 그런 부모님들보다 예술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미적 가치를 인정하고 즐기며, 특히 옷차림은 그들에게 스스로를 규정하는 행위이고 스스로의 미적 가치에 대한 선언이다, 자신들이 수업을 통해서 자라나는 모습을 스스로 관찰하고 인정한다.  창의적이고 이성적인 모습은 강사에 대한 태도에도 나타난다.  질문이나 대답에 주저하거나 본인이 모르고 있을 부끄러워서 알고 있다고 이야기 하지 않는다. 


             
강사에 대한 존경 방식도 틀리다.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 정서는 씻고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  만약 그런 정서를 가지고 있는 학생이나 선생이 있다면 나머지 학생들과 선생들이 오히려 이상한 그를 바라볼 것이다.  유교를 가르치고 배우는 사람들이 명이나 미국에 있겠는가?  그런 모습은 선배가 깡패고 나이가 특권이던 8, 90년대 한국 사회를 거쳐온 세대들은 익숙하기 힘든 부분이다.  나이에 대한 가치를 언급하고 나니 지금 한국 사회에 나이라는 가치가 어떤 모습을 띠고 있는지 사뭇 궁금해 진다. 


             
강사의 강의 내용은 수업 이름을 벗어나지 않는다.  수업 진도와 무관하게 자신의 어린 시절과 인생 유전을 이야기하시는 선생님은 찾아볼 없다.  가끔은 인간적인 모습이 결여된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한국의 고등학교 시절 육이오 전쟁 직후 유년 시절 에피소드를 반복해서 이야기하고 해주시고, 이야기를 하실 때마다 지그시 창문 밖을 바라보시던 국어 선생님의 술이 모습에 향수가 어리기도 한다. 


             
고등학교 학생들의 수업은 그룹 전시로 마무리된다.  학생들의 작품이 벽에 붙여지고 학부모들과 친구들이 토요일 오전 학교를 찾아와 삼삼오오 전시를 관람하며 서로의 감상을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낸다.  강사는 이때 자신이 가르친 수업에서 나온 그림들이 모여 붙어있는 곳에서 학생들과 학부모 혹은 학생들의 친구를 대접한다. 


             
학부모들은 열명이면 열명, 자식의 작품을 경이롭게 바라보며 자랑스러워 한다.  그리고 강사들은 그들과 장단을 맞추며 웃음을 교환한다.  아마도 모습은 예전에도 이랬을 같고 시간이 한창 지나도 이럴 같다. 

2007년 8월 5일